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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등장인물:) 강민첨 장군(+이철민, 생애, 죽음, 애수진장)

알풀레드 2024. 1. 2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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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고려 현종 때 일어난 고려거란전쟁에서 큰 활약을 했던 강민첨 장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드라마에서 강민첨 장군은 배우 이철민 씨가 맡았으며, 매화마다 출연하고 있는데요. 실제 역사 속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서경 전투에 참여해 끝까지 서경성을 지켜냈고, 3차 고려거란전쟁에서 강감찬 장군을 도와 최고의 무훈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인지도가 낮아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장군이기도 하죠. 고려거란전쟁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주었는지 알아볼까요? 

 

출처. 고려거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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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강민첨은 963년 강주 개경향(현재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아버지 강보능과 어머니 거창 신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15세까지 향교(지방 공교육 기관)를 다녔다고 하는데요. 1005년 4월 고려 목종 시기 42세의 늦은 나이로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즉 무관 출신이 아닌 문관 출신으로 볼 수 있는데요. 장사랑(종9품 하), 문림랑(종9품 상), 도교령(종8품), 안변도호부 장서기(정7품 지방관직)을 역임하였는데요. 주로 행정적인 업무를 수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고려거란전쟁

 

제2차 고려거란전쟁이 발생한 시기 동북면 애수진장(함경남도 고원군, 7품으로 보이며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음)으로 근무를 하였는데요. 통주 전투에서 고려군이 대패하자 동북계의 군대가 서경으로 전환 배치되면서 서경으로 이동했습니다. 당시 서경부유수 원종석 거란군이 통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곽주, 영주, 숙주성을 함락시키고 거침없이 진격한다는 소식에 항복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자기가 문을 열었고, 동북면 군사들이 성에 들어가 그를 처단하고 서경성에서 결사 항전을 준비합니다. 

 

출처. 고려거란전쟁

 

1010년 12월 거란족이 서경성을 공격하기 위해 선봉대가 당도하자 이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둡니다. 이로써 서경성 군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죠. 하지만 거란군이 대군을 이끌고 서경성을 포위하려고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성 밖에서 싸웠으나 유인책에 패퇴하게 되는데요. 치열한 공성전을 하던 중 동북면 도순검사 탁사정이 대도수를 속여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로 인해 서경성의 지휘부와 주력군이 증발하는 황당한 사태가 일어나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장군들은 다시 한번 심기일전하여 강민첨과 통군녹사 조원, 낭장 홍협, 방휴 등이 조원을 병마사로 추대하고, 병사들과 백성들을 독려하여 끝까지 서경성을 지켜냅니다. 결국 요 성종은 서경성의 포위를 풀고 개경으로 향하게 되죠. 

 

출처. 고려거란전쟁

 

고려거란전쟁이 끝난 후 강민첨은 도관시의 원외랑(정6품)으로 제수되었습니다. 그리고 안찰사(정5품)으로 승진하죠. 1012년 5월 청하현, 영일현, 장기현에 쳐들어온 동여진 해적의 침입하자 문연, 이인택, 조자기와 함께 도부서(총지휘부)에 임명되어 군사를 독려해 그들을 격퇴하였습니다. 1016년 내사사인(종4품)에 임명되었고, 1018년 대장군이 되어 강감찬을 도와 거란의 소손녕을 흥화진에서 대파합니다. 이어 삼교천 전투에서 수공을 가한 후 매복기병 12,000명을 돌격시켜 거란을 격파합니다. 

 

출처. 고려거란전쟁

 

소손녕은 곧바로 남하하여 개경으로 돌격하자 강민첨은 자주(평안남도 순천시)의 내구산까지 추격하여 대승을 거둡니다. 1019년 1월 연주와 위주에서 청천강을 건너 돌아가려는 거란군을 요객해 500의 수급을 얻었으며, 2월 귀주 대첩에서 패퇴한 거란군을 추격해 1만을 포로로 잡거나 참수하였습니다. 이러한 공이 인정되어 응양군 상장(정3품) 주국(2등급 훈위, 정3품 훈직)으로 발탁되었다가 우산기상시(정3품)로 옮겼고, 추성치리익대공신(훈직)의 칭호를 받았으며, 그 이듬해에는 지중추사(종2품), 병부상서(정3품)가 되었습니다. 

 

출처. 고려거란전쟁

 

출세가도를 달리던 강민첨은 1021년 11월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요. 고려 현종은 강민첨의 공을 기려 3일간 조회를 하지 않고 추모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자태부(정1품), 문하시랑 평장사 수상(정2품)에 추증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서를 내려 공을 기록하고 그의 아들 강단에게는 녹봉을 올려주었습니다. 고려사나 당대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진주 강씨 문중에서는 강민첨이 은열공(남작)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진주 강씨 은열공파가 탄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출처. 고려거란전쟁

 

평가

 

강민첨은 서생에서 벼슬에 오른 사람으로 무예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성품은 기개가 굳고 과단성이 있었기에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워 현달(세상에 이름을 알림)하게 되었는데요. 42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종9품에서 시작해 사후 태자태부(정1품)까지 오른 고려 최고의 입지전적인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고려의 강민첨이라는 인물은 우리가 꼭 기억했으면 좋겠군요. 

 

출처. 국립중앙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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