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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등장인물:) 하공진(+이도국, 생애, 죽음)

알풀레드 2024. 1. 14.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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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충절을 지켰던 무신 하공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하공진의 역은 이도국 씨가 맡아 열연을 해주어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흥화진의 늑대라고 불린 '양규'라는 숨은 영웅을 알게 되었듯이 하공진이라는 영웅을 시청자들이 알게 되었는데요. 그의 행적과 의로운 죽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고려거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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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하공진은 고려사 열전 94권에 서희, 강감찬, 양규, 지채문 등과 함께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994년(성종 13) 압강도구당사에 임명된 하공진은 고려와 거란의 경계인 압록강의 진도(津渡, 나루터)를 관장하였습니다. 1009년(목종 12년)  중랑장으로 승진하여, 중랑장 탁사정, 친종장군 유방 등과 목종을 호위하였는데요. 강조의 정변이 일어나자 탁사정 등과 함께 강조의 편에 서게 됩니다. 아마 김치양 일파나 유행간 등과 같은 간신들에게 놀아나고 있는 목종에게 실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 후 상서좌사낭중(정5품)이 됩니다. 

 

출처. 고려거란전쟁

 

1010년(현종 1년) 하공진은 임의로 군사를 움직여 동여진의 촌락을 공격하다가 패배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로 인해 동료였던 유종이 원한을 품고 있다가 외교를 목적으로 고려의 화주관에 도착한 95명의 여진족을 살해합니다. 결국 하공진은 유종의 일에 연류되어 먼 곳으로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추측건대 당시 여진은 여러 부족으로 분열되어 있었으며, 척박한 땅에 살던 그들은 고려 국경을 침탈하는 등 잦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출처. 고려거란전쟁

 

제2차 고려거란전쟁 발발

 

여진족은 즉시 거란족에게 강조의 정변을 고하게 됩니다. 당시 요 성종은 송나라를 점령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는데, 항시 후방의 고려가 눈에 가시였기에 고려를 정벌해 후방을 안정시키려고 하였는데요. 요나라 거란족의 성종은 소배압을 필두고 고려를 공격하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이에 현종은 결국 몽진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하공진과 유종을 소환해 그들의 관직을 회복시킵니다. 

 

출처. 고려거란전쟁

 

하공진은 고영기와 함께 군사 20여 명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피난을 가고 있던 현종을 보호하기 위해 뒤따르게 되는데요. 현종의 몽진 길에 지역의 호족들은 현종을 깔보거나 목숨을 위협하는 등 엄청난 고생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현종의 목숨을 지켜낸 사람이 바로 지채문 장군이었습니다. 한 호족은 하공진이 현종의 목숨을 노리고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소란을 피웠고, 이 말을 믿은 금군은 대부분 도망쳐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하공진이 유배를 떠난 일로 원한을 품었다고 오해하였기 때문이죠.  

 

출처. 고려거란전쟁

 

하지만 하공진은 역모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현종을 보호하기 위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문제는 거란족의 추격병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하공진은 목숨을 건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바로 국왕의 사절로 요성종을 만나 담판을 짓을 것이었습니다. 거란족은 현종을 잡지 못한 채 전쟁이 길어지면서 보급 등으로 인해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이때 하공진은 요 성종에게 현종은 이미 멀리 도망갔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배짱 있게 말했고, 이를 믿은 요성종은 결국 철수를 결정하게 되죠. 만약 거란족의 추격대가 계속 추격을 했다면 현종이 사로잡히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였을 수도 있었습니다. 

 

출처. 고려거란전쟁

 

하공진의 최후, 의로운 죽음

 

하공진은 고영기와 함께 요나라의 볼모로 잡혀가게 되는데요. 현종의 안전이 보장된 이후 지속적으로 고려로의 탈출을 시도합니다. 요 성종은 하공진의 재주를 높이사 신하로 삼으려고 했으나 하공진은 불사이군의 태도로 고려에 대한 충정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화가난 요성종은 하공진에게 악형을 처하지만 하공진은 굴하지 않고, 오히려 요 성종에게 모욕을 주었다고 전해지는데요. 결국 요 성종은 하공진을 신하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참형을 명령합니다. 이후 간마저 꺼내져 씹히기까지 했다고 하는데요. 거란족의 잔인함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출처. 고려거란전쟁

 

하공진의 죽음 이후 상서공부시랑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아들인 하측충에게 5품직을 뛰어넘는 관직을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공진은 진주 하 씨 시랑공파의 시조가 되며, 진주성 내에 있는 경절사에 배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공진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기 위해 하공진 놀이라는 조희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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