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를 도와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성리학적 사상에 입각해 조선을 건국한 삼봉 정도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정도전은 역성혁명의 논리를 고려 왕조에 대입했는데, 통치자가 민심을 잃었을 때 물리력으로 왕조를 교체할 수 있다는 맹자의 사상이 근본이 됩니다. 국운이 기울어가던 고려왕조를 폐하고 성리학 사상을 통치 이념으로 꿈꾸던 시대의 풍운아였던 것이죠.
시대를 바꾸는 자들은 어떠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어 이를 부단히 극복하려는 노력이 어떠한 일을 추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도전 역시 큰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외조모 집안이 노비 출신이라 출신 성분이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고 합니다. 정도전의 고조부 정공미는 고을의 아전격인 호장으로 있었으며, 대대로 미미한 벼슬을 유지해오다가 아버지 정운경에 이르러서야 직제학이라는 중앙 관리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정도전 역시 어린 시절 촉망받는 인재로 과거에 급제를 하게 되는데요.
출신 성분으로 인해 동문수학했던 벗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외톨박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이는 정도전이 역성혁명을 꿈꿀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죠. 아버지 정운경이 이색의 아버지 이곡과 친구였던 덕분에 정도전은 이색 문하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친우이자 평생의 숙적인 정몽주와 교분을 쌓게 됩니다.
24세가 되던 1360년(공민왕 9년) 성균시에 합격하고 2년 후 진사시에 붙어 충주사록, 전교주부, 통례문지후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정도전은 신진사대부로서 강직한 성품을 지니고 있어 공민왕에게 총애를 받았고, 공민왕이 시해된 후 귀양을 가게 됩니다. 공민왕에게 총애를 받은 이유로는 권문세족을 비판하고 원나라와 단교를 주장했기 때문인데요. 반대로 권문세족에게 미움을 받게 된 계기가 되었죠.
정도전은 전라도 나주목에 유배되었다가 2년 뒤 유배지에서 풀려난 후 낙향하여 4년간 칩거하다가 한양으로 가 삼각산 밑에 초가를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권문세족은 그런 정도전을 가만히 두지 않고 학당을 강제로 박살 내는 등 괴롭혔다고 합니다. 정도전은 김포로 이사를 했는데, 이렇게 유랑하는 중 나라를 뒤엎고 싶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는데요. 바로 황산 대첩의 영웅 이성계를 만나게 된 것이죠. 이성계 역시 어느정도 야심을 가지고 있던 인물로 각종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며 영웅으로 추앙받았지만 반대로 중앙 중계에 있는 이들에게 위협을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함께 할 것을 결의하고, 이성계의 도움으로 정도전은 다시 성균관 대사성에 오르게 되죠.
당시 고려 조정은 이인임과 최영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고려 우왕은 최영의 주장에 따라 요동 정벌을 계획했고, 5만의 병력을 동원하였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원정을 감행함에 따라 현장 지휘관이었던 이성계와 조민수는 위화도까지 나아갔다가 회군하여 최영 등 구세력을 몰아내게 됩니다.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잡은 이성계 일파는 새로운 왕조 건국을 위해 조금씩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요. 우왕과 창왕을 폐위한 후 공양왕을 옹립하였습니다. 공양왕은 정몽주의 도움을 받아 최후의 저항을 하지만 선죽교에서 정몽주가 피살당하면서 끝내 고려왕조는 망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정도전과 조준, 권근 등이 탄핵을 당해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정몽주는 위화도 회군 이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였습니다. 1390년 모든 토지 문서를 불태웠고, 이듬해 과전법을 발표하였습니다. 특히,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공을 세우게 되는데요. 새 왕조를 건국한 후 유교적 왕도 정치의 실현을 위해 매진합니다. 특히, 조선경국전을 편찬해 새로운 법제도의 틀을 닦았고, 도읍을 옮겨 새 왕조의 면모를 높였으며, 경제문감을 저술하여 재상, 대간, 수령, 무관의 직책을 확립했습니다. 또한, 명의 공물 요구가 거세지자 요동 정벌을 계획하고, 군량미 확보, 진법 훈련, 사병 혁파 등 병권 집중 운동을 진행하는데요.
문제는 사병 혁파를 하는 과정에서 이방원의 무력 동원으로 중도에 좌절되게 됩니다. 현재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이 과정이 잘 나타나고 있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1차 왕자의 난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확히 정도전이 세자 이방석을 지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덕왕후 강씨에 의해 방석의 지위가 확고해지자 왕도 사상을 가리키는 스승이 되기도 합니다.
역사에 IF는 없지만 만약 정도전이 이방원을 지지했다면... 혹은 사병 혁파에 성공하고... 국왕이 된 이방석 아래 신권 중심의 정치를 펼치게 되었다면... 정도전의 이상을 실현하고... 조선은 새로운 방향으로 운영이 되었을 것인데... 과연 긍정적인 결과가 될지.. 혹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어쨌든 이방원에게 정치적으로 패한 후 정통성 확립 작업에 들어가게 되면서 종친들을 이간질하고 해하려는 죄목을 얻고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이 됩니다. 하지만 정도전 개인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상, 병법 등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조선의 풍운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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