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 정월 이방원의 바로 윗형이자 태조 이성계의 넷째 아들 회안공 이방간은 박포와 함께 사병을 동원하여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킵니다. 일반적으로 이방원이 난을 일으켜 정도전 일파와 세자 방석을 제거한 사건을 1차 왕자의 난이라고 부르며, 이어 이방간이 일으킨 난을 2차 왕자의 난이라고 불립니다. 2차 왕자의 난은 박포가 이방간에게 간사한 입을 놀려 현혹한 결과 난이 일어났다고 하여 '박포의 난'이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앞서 이방원을 주축으로 신덕왕후 한씨 소생의 형제들은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1차 왕자의 난이 성공하자 모든 권력은 이방원에게 집중되는데요. 정도전은 사병혁파를 통해 중앙에서 군대를 통제하려고 하였으나, 이방원의 입장에서 사병을 빼앗기게 된다면 그야말로 목숨을 내놓아야 할 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병을 빼앗기기 전에 서둘러 정도전을 제거하게 된 것이죠.
1차 왕자의 난의 결과 태조 이성계의 둘째 아들 이방과가 조선 제2대 국왕으로 즉위합니다. 물론 현대로 치면 이방원의 바지사장 역할을 한 것인데요. 실권을 손에 넣은 이방원은 사병의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복기하게 됩니다. 언제든지 자신도 사병에 의해 공격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죠. 이에 함께 난을 일으켰던 동복형제들의 사병이 큰 위협이 되었고, 정도전의 정책을 이어받아 사병을 혁파할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이방원이 본격 사병을 혁파할 조짐이 보이자 넷째 이방간은 크게 반발을 하게 됩니다. 비록 2대 국왕에 정종이 즉위하였으나 명목상 왕에 올라 있어 왕위 계승의 중론이 이방원에게 흐르자 이방간의 시기심과 불만이 폭발하게 된 것이죠. 그런 와중에 박포가 이방원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밀고하자 그 말의 진위를 가려보지도 않고 사병을 동원해 난을 일으킵니다.
기록상으로 남아있지 않지만 전반적인 흐름상 넷째 이방간은 아래 동생 이방원에 대한 경쟁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큰 형 진안대군 이방우는 전주 이씨 문중의 장남으로 음서를 통해 벼슬에 올랐고, 둘째 형은 이성계를 따라 종군하면서 동북면 가별초를 이끄는 사실상 후계자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넷째 동생 이방원은 과거시험(오늘날 행정고시 + 사법고시)에 급제하면서 집안을 부흥시킬 아들로 이성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되는데요. 이방간은 특출난 재주가 없어 동북면에서 골목대장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 보니 동생에게 콤플렉스를 느끼게 된 것 같네요.
이방간에게 밀고한 박포는 어떠한 인물일까요? 박포는 1398년 1차 왕자의 난 때 조전 절제사로 있다가 이방원에게 가담하여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의 동정을 몰래 염탐하다가 이들의 위치를 이방원에게 알렸습니다. 이에 지중추원사 의흥 삼군부 우군 동지절제사에 임명되었지만 2등 공신에 봉해진 논공행상에 불만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이방원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서 죽주로 유배되었는데요.
당시 이방원은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을 때 박포보다 더 큰 공을 세운 이숙번, 민씨 형제들 역시 2등 공신에 봉하였습니다. 정치적인 계산을 바탕으로 조준 등 원로 대신을 1등 공신으로 봉해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2등 공신인 이숙번, 민 씨 형제들은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한 것으로 보아 이방원의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절대적인 믿음으로 지지한 것에 대한 보답을 받은 셈이죠. 하지만 박포는 눈앞에 보이는 논공행상에 큰 불만을 품다가 결국 벌을 받게 된 것인데요.
박포의 충동질에 이방간은 형 상황에서 이방원만 제거하면 차기 대권 후보로 자신이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야망을 품게 된 것 같습니다. 이미 조정과 집안에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던 이방원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은밀한 계략을 통해서 그를 제거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충동적으로 군사를 일으켰기 때문에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습니다.
이방간이 난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형제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직접적으로 개입은 하지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모두 이방원을 지지했다고 합니다. 이방원의 군사와 이방간의 군사는 개경 한복판에서 치열한 시가전을 벌였으나 당연히 이방원이 승리를 하게 되는데요. 싸움에서 패배한 이방간은 체포되어 유배당하고, 박포는 붙잡혀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2차 왕자의 난의 결과 조정 내에 이방원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사라졌고, 이방원은 세제로 책봉된 후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조정에서는 난을 일으킨 이방간을 죽여야 한다고 간언하지만 이방원은 죽을 때까지 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방간이 병이 생겼을 때 의원을 보내 그를 치료하게 도와주기도 했다고 하니 형제들에 대한 애틋함은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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