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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대 국왕 정종(영안군 이방과), 재위기간, 가계도

알풀레드 2022. 1. 9.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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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대 국왕 정종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정종의 휘(왕이 생전에 쓰던 이름)는 이방과였으며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 씨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조선 건국 후 영안군에 봉해졌으며, 1차 왕자의 난으로 이복동생 이방석이 폐위되자 뒤를 이어 왕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그리고 태조에게 선위를 받아 2대 국왕에 즉위[재위 기간: 1398년 10월 14일~1400년 11월 28일]하였죠. 조선 초기 왕권이 없는 왕의 비참함을 보여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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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이방과는 매우 유약한 모습으로 동생 이방원의 눈치를 보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라다보니 전형적인 문관형 인물로 이미지가 박혀있는데요. 사실 이방과는 고려말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전쟁터를 종군했던 전형적인 무장으로 이성계의 무인적인 기질을 가장 많이 물려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조선 건국 전 우리에게 이미지 메이킹된 이방원과 이방과의 모습이 사실 뒤 바뀌었다고 할 수 있죠. 이방원은 고려 과거 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문관으로서의 자질이 뛰어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출처. 좌: 용의눈물, 우: 태종이방원

  

이방과는 함흥부에서 태어나 약관의 나이에 이성계를 따라 왜구를 토벌하는데 동행을 했습니다. 또한, 황산 대첩에도 이성계의 곁을 지키며 활약을 했습니다. 형제들 가운데 전장에서 가장 오랜 기간 이성계를 보좌한 것이죠. 

 

출처. 태종 이방원

 

이방과가 이렇게 이성계를 따라 참전한 이유로는 전주 이 씨 가문의 후계자로서의 입지가 강했기 때문입니다. 이성계는 동북면의 군벌로서 중앙 정계에 진입을 했는데 개경에서 가문의 수장의 역할을 이방우가 했다면 동북면의 영지를 관리하고 가별초를 통솔할 사람으로 이방과가 낙점된 후 군인 수업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출처. 태종이방원(좌: 이방우, 우: 이방과)

 

특히, 이방원과 가깝게 지낸 것으로 보이는데... 이방원이 포은 정몽주를 척살할 계획을 세울 때 형제들 중 유일하게 동참을 했다고 하네요. 즉, 군인으로서 이방과는 호방한 성격을 가진 인물로서 역성혁명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참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방과는 이성계를 따라다니며 군공이 적은 것이 아니라 이성계가 유고시 그를 대신할 수 있을 만큼 존재감이 컸으며, 정몽주를 살해한 후 공양왕에게 정몽주 계열 인사를 처벌하라고 압박했다고 합니다. 당시 이방과는 판밀직사사(종 2품)의 직위를 맡았습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이방과는 영안군에 봉해지고, 당시 태조의 친위 부대인 의흥친군위의 의흥친군위 절제사에 임명되는데요. 조선 군국 후 왕자들이 찬밥 대우를 받으면서 권력이 정도전, 남은 등에게 쏠리게 되자 이를 강력하게 비판하였다고 합니다. 1398년 이방원을 중심으로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게 되고 이복동생인 이방번과 이방석이 살해되면서 이방과가 반강제로 세자에 임명됩니다. 당시 진안대군 이방우는 사망한 상태였죠. 

 

출처. 태종 이방원

 

태생이 군인이었던 이방과가 왕세자가 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스스로도 동생 이방원이 세자에 올랐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네요. 전쟁에서 용맹을 발휘하는 장수로서 죽음을 겁내지 않았겠지만 정치판에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압박감은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왕세자에 책봉된 후 바로 조선 2대 국왕이 되었으나 실권이 모두 동생 이방원에게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격구나 사냥을 즐겼다고 합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1399년 한양의 지형에 문제가 있다 하여 수도를 다시 개경으로 옮겨갔으며, 같은 해 8월 분경금지법을 제정, 관인이 왕족이나 외척들에게 의존하는 것을 금지하여 권력을 가진 귀족들의 힘을 약화시켰습니다. 이후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정종은 간접적으로 이방원을 지지하고, 이방간에게 항복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2차 왕자의 난이 진압된 후 이방원을 세자로 삼았으며, 1400년 11월 왕위를 방원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습니다. 정종은 상왕이 된 후 2년 간 지옥 같은 생활을 청산하였는데요. 제사나 불공을 드린다는 핑계로 전국 각지의 온천 유람을 하는 등 유유자적한 생활을 영위하였다고 합니다. 태종은 그런 형의 모습을 부러워했다고도 전해지죠. 

 

출처. 태종 이방원

 

왕위에 물러난 19년 후 세종 원년에 6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죽은후에도 오랫동안 묘호도 없이 공정 대왕으로 불리다가 1681년에 비로소 정종이라는 묘호 받게 되는데요. 사실상 왕의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죠. 태종 이방원이 형제들 간 우애를 매우 중요시하여 정종은 나름 편안한 삶을 누리다 간 것이지만 왕으로서는 실권 없는 왕의 비참함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종의 주요 가계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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