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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 실존인물] 동학농민운동의 총관령.. 김개남 소개.. 백이강의 모티브?

알풀레드 2019. 5. 4.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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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녹두꽃... 요즘 너무 재미있게 보고있는 드라마인데요. 실존인물과 가상의 인물이 뒤섞여 있다보니... 실존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네요. ㅎㅎ 일단 동학농민운동의 실질적인 리더 전봉준에 대한 소개와 황석주의 모티브로 보여지는 황현 선생에 대해 살펴보았고... 오늘은 동학농민운동을 이끌었던 총관령 김개남에 대한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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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협과 후퇴를 모르는 강경파 리더 김개남


   김개남 장군의 역할은 김정호 씨가 맡았는데요. 드라마 상의 인물 소개를 살펴보면, 태인의 대접주로 손화중과 더불어 동학농민군의 2인자 격인 총관령으로 등장합니다. 본명은 기범이나 '조선의 남쪽을 개벽한다'는 의지로 개남으로 개명하였고, 시종일간 강경노선을 추구하였으며 피아가 분명하고 호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민초들에겐 더없이 따뜻하지만 가진 자들에게는 저승사자 같은 사람이라고 하네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 작품의 주인공인 백이강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적의 총구를 이마에 대고도 후퇴를 모르는 직진남이라는 성격은 아마 김개남 장군의 성격에서 따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본격적인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후 어느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 인물에 대해 한번 살펴볼께요.




   한말의 유학자 매천 황현 선생이 쓴 오하기문에 김개남과 전봉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도둑들이 처음 고부에서 봉기할 적에 그 괴수는 태인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전라 좌우도에서 태인 접이 으뜸이었다. 전봉준과 김기범(김개남)은 나이가 마흔 살쯤 되었다. 기범의 일가붙이는 대대로 태인에 살았는데, 사람들이 도강 김씨라고 불렀다. 기범은 사납고 무단스러워 난을 일으킬 적에 여러 일가붙이가 모두 따랐기 때문에 도강 김씨에 스물네 명의 접주가 있었다. 

 

   김개남(1853-1895)은 태인(전라북도 정읍)에서 출생하였고... 유년시절에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남들처럼 어릴 적에 서당을 다녔는데... 일반적인 아이들과 달리 병서를 즐겨 읽었다고 하며... 마을 소년들과 어울려 곧장 장난질을 치는 등 말썽을 많이 부렸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일화가 과일이나 채소 서리가 아니라 통크게 돼지를 서리해서 부모들의 마음을 조리게 한 기록이 있죠.




   유복한 개구장이 시절을 보낸 후 철이들 무렵부터 인근 원평이나 전주를 넘나들면서 전주 영장 김시풍과 교분을 쌓았다고 하며... 이때 인근 영웅들과 교류하고... 고통에 신음하는 농민들을 보면서 이런 봉건 제도에 대한 타파를 꿈꾸었을지도 모릅니다. 




   20대 후반 김개남은 전봉준과 만나게 되고... 당시 유행하던 동학을 접하게 되는데요. 당시 전국을 떠돌던 김개남은 세상 경험을 하면서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그리고 동학에 입도... 동학의 시천주신앙과 후천개벽사상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수행과 포교에 힘썼으며... 1891년 두령... 즉 접주가 됩니다. 그리고 집안 사람인 도강 김씨들 역시 자연스럽게 동학에 입도시키게 되죠.

 



   접주가 된 김개남... 주변의 다른 접주들과 자주 접촉을 하고... 이중 고부 접주 전봉준.. 무장 접주 손화중... 금구 접주 김덕명... 주산 접주 최경선 등과 각별한 친교를 맺게 됩니다. 그리고 1892년 전국 교도들이 전라도 삼례에 모여 탐관오리의 제거와 교조 신원을 위한 시위 운동을 폈을 때 호남 접주들과 더불어 많은 교도들은 동원하여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 명성이 드높아지면서 동학의 지도자가 됩니다. 




   국가에서 동학을 탄압하기 시작되자... 강경파 접주들과 대책을 모색... 1894년 초 전봉준이 선봉에서 고부민란을 일으키자... 손화중과 함께 동학군을 일으켜 4월에 백산에 동학운동 본부인 호남창의소를 설치하고 전봉준을 동도대장으로 추대... 자신은 총관령 직은 맡았습니다.




   고부민란 이후 용안 현감 박원명이 고부 군수로 임명되어 사태를 수습하려고 시도하였는데... 이때 안핵사로 온 이용태가 동학교도들을 체포 및 살해하자... 다시 전봉준이 농민들을 이끌고 본격적인 동학농민전쟁으로 전환... 전라 지역을 파죽지세로 점령... 끝내 전주성까지 점령을 합니다. 이때 전봉준은 정부와 전주화약을 맺고 잠시 휴전을 갖게 되는데... 일단 전봉준은 역성혁명의 명분이라기 보다는 백성을 수탈하는 탐관오리를 백성들 스스로 처분할 수 있도록 한데 비해...  




   김개남은 소위 이런 더러운 세상... 내가 뒤집어 버리겠다... 라는 입장을 내보인 대표적인 강경파로서... 자신의 지휘권에 있는 백성들을 이끌고 남원을 중심으로 임실, 장수, 무두 등을 반 독립적인 움직임을 보입니다. 그리고 노비, 백정, 승려, 장인 등의 천민들을 이끌고 양반들을 습격하여 욕을 보였고...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양반의 주리를 틀고 곤장을 치기도 하였죠.  




   동학농민운동을 구실로 일본군과 청군이 조선으로 들어오고... 청일전쟁이 발발... 일본이 승리하자...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구실로 동학군을 공격하게 되는데요. 전봉준이 2차 봉기를 일으키고 우금치 전투를 할 때 여기에 참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청주 방면을 공격하는데... 전술적으로 공격에 실패... 김개남의 부대는 와해가 됩니다. 그리고 정읍 태인으로 도망을 가지만... 그 곳에서 임병찬의 고발로 체포... 1894년 12월 13일 즉결 처형당해 효수가 됩니다. 




   김개남의 용맹함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임병찬을 찾아간 김개남... 그리고 임병찬이 전주감영에 신고하고... 군사들이 들이닥처 김개남을 잡으려고 하자... 마침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있던 그는 볼일을 다보고 나가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백성들은 김개남이 잡혀갈 적에... '개남아, 개남아, 김개남아.. 그 많던 군대 어데 두고 짚둥우리가 웬 말이냐' 또는 '개남아, 개남아, 진개남아, 수많은 군사 어데 두고 전주야 숲에는 유시했노' 라는 노래가락으로 안타까워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런 농민운동의 실패로... 그 후손들은 김개남이 소장하고 있던 책을 모두 불태웠고... 역적의 자손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다고 하지만... 현재는 김개남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재평가되면서 후손들 역시 당당하게 살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개남의 효수된 목을 전봉준의 목이라고 잘못 설명이 된 적도 있답니다.


<출처. https://cho-a47.tistory.com/1691>



   난세를 호령했던 한명의 영웅 김개남... 정말 불꽃같은 삶을 살아갔는데요.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이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학농민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그의 시신을 찾지 못했으나... 1995년 4월 김개남 장군이 살았던 태인에 가묘와 묘비가 세워졌다고 하네요. 



<출처. 네이버 지식 사전 및 나무위키, 녹두꽃 영상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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