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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 인물소개]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최무성) 소개!

알풀레드 2019. 4. 2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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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SBS에서 기대리던 '녹두꽃' 이라는 금토 드라마가 방송될 예정입니다. 이 녹두꽃 드라마의 티저가 중간중간 공개될 때마다 주요 포탈 사이트에서 검색어 1순위가 될 만큼 시청자들에게 관심을 끌었는데요. 




   많은 이들이 기다리던 '녹두꽃'... 이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바로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던 해의 이야기로 평소 관심을 얻지 못하는 민초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일 것 같아요. 


   


   특히 녹두장군 전봉준, 시대의 ㄱㅆㅅㄲ 조병갑,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 등 실존인물들의 이야기를 적절한 픽션을 통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전봉준 역 최무성! 


   그렇다면 드라마를 보기에 앞서서 실존 인물 중 우리들에게 가장 널리 이름이 알려진 녹두장군 전봉준에 대해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겠죠? 우선 녹두장군의 전봉준의 역할은 최무성 씨가 맡았다고 합니다. 




   최무성은 원래 영화감독을 지망하였으나... 배우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미 다양한 영화에 출연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악마를 보았다, 순수의 시대, 항거 등에서 이름을 알렸고... 드라마 응답하라1988에서 아버지 최무성 역을 맡으며 인지도가 급 상승하였죠. 




   전봉준 소개!


    전봉준이라는 인물은 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 지도자로 알려져있습니다. 생애는 1855년에서 1895년이며... 본관은 천안.. 자는 명좌.. 초명은 전철로.. 별명은 전영준.. 호는 해몽이라고 합니다. 전봉준이 녹두장군이라고 불린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데요. 



   

   전봉준은 어릴적부터 상당히 왜소하고 키가 작았다고 합니다. 흔히 키가 5척(152cm)로 알려져있는데요. 그러다보니 흔히 녹두라고 불렸고... 훗날 녹두장군이라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전봉준의 생애


   정봉준의 조상을 살펴보면... 서당이나 한약방 등을 운영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러한 부분을 보면 몰락한 양반 집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봉준의 부친 전창혁은 고창 당촌 마을에서 서당 훈장과 고부 마을에서 향고의 장의를 했다고 하죠. 전봉준이 젊은 시절 가정 생활은 상당히 궁핍했다고 합니다. 




   전봉준공초(녹두장군의 재판 기록)을 살펴보면... 1894년 12월 2일 전봉준이 체포된 이후 1895년 2월 9일에서 3월10일까지 약 한 달간 총 5차례에 걸친 심문이 274개의 문답으로 빼곡히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까지 남아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땅은 논밭을 합쳐 세 마지기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며... 몰락한 양반으로 가난하게 자랐지만 훈장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올곧은 선비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틈틈이 글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대신 관아에 넣을 글을 써주기도 했다고 적혀있습니다. 




   당시 고부 군수 조병갑이라는 희대의 ㅆㅅㄲ가 여러 주와 군을 돌아다니며 가렴주구(가혹하게 세금을 거두거나 백성의 물건을 뺏음)를 일삼아 농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습니다. 당시 조병갑이 모친상을 당한 후 부조금으로 백성들에게 돈을 거두게 하였고... 이는 부당한 일이라며 전봉준의 아버지 전창혁은 항의하다가 곤장을 맞고 죽음을 당하게 되는데요. 




   이와 더불어 만석보라는 이름의 저수지를 백성들의 노동력으로 건설한 후 사용료도 백성에게 받는 등 횡포가 극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만석보 사건으로 인해 분노한 군민들은 전봉준을 지도자로 삼고 민란을 일으키게 되며... 이것이 동학농민운동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1893년 동학접주 전봉준을 장두로 삼아 관아에 가서 조병갑에게 진정서를 제출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쫒겨남에 따라 동지 20명을 규합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발통문을 작성하고 거사할 것을 맹약한 후 1894년 정월 10일 1,000여명의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봉기를 하였는데요. 이것이 바로 고부민란입니다. 




   이때 정부는 급히 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조병갑 등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고 새로운 장흥 부사 이용태를 안핵사로 삼고, 용안 현감 박원명을 고부 군수로 임명하여 사태 조사와 수습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백성들은 조병갑이 처벌을 받게 되자 대게 집으로 돌아가고 민란은 잠잠해지게 되는데요. 




    문제는 안핵사로 내려온 이용태가 사태의 모든 책임을 동학교도들에게 돌리고 체포와 분탕 살해 등 악랄한 행동을 자행하자 1894년 3월 다시한번 보국안민을 위한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이때 봉기에 나선 백성들이 무려 1만 이 넘었다고 하며... 전봉준은 동도대장으로 추대되고 손화중, 김개남을 총관령으로 삼아 보좌하였다고 전해집니다. 




   1894년 4월 4일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부안을 점령... 전주로 향하고... 정읍, 흥덕, 고창을 점령한 후 파죽지세로 무장에 진입... 영광, 함평, 무안 일대로 진격하여 핵심 지역인 전주까지 점렴하였습니다. 이에 조정은 급히 동학군과 휴전하고 잠시의 평화를 이끌어 내었는데요. 




   문제는 조정에서 동학농민군과 화친을 하기 전 청국 원병요청을 하였고.. 청군은 이때다 싶어 조선으로 군대를 파병합니다. 이에 일본군 역시 텐진조약에 따라 제물포(인천)로 군을 끌고 들어왔고... 두 군대는 청일전쟁을 벌여 결국 일본이 승리를 하게 됩니다. 




   왜놈들은 청국을 물리친 이후 도성을 점령하고... 고종을 위협하여 개화 정책을 추진하는데... 이에 전봉준과 동학군은 척왜근왕을 외치며 다시한번 농민을 모아 도성으로 진격하였습니다. 




   공주 우금치까지 진군한 동학농민군은 신식 무기로 잘 갖추어진 일본군을 상대로 잘싸웠으나... 일본군과 조선 관군에게 대패(우금치 전투)... 이후 순창으로 밀렸으며... 재기를 위해 다시한번 일어서려고 하였지만... 옛 부하 김경천의 밀고로 체포된 후 도성으로 압송되었고... 결국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앞서 일본군에 의해 압송당하는 이 사진 한장이 전봉준의 유일한 모습을 알 수 있는 사진이라고 합니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사망한 이후... 이들의 실패에 대한 안타까움과 실망을 담은 동여인 파랑새가 유행하였습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아마 많이들 들어보셨겠죠?ㅠㅠ? 참...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백성들을 향해 칼을 겨눈 관군... 무능한 관리들... 절망스러운 시대 상황... 항상 시대를 넘어 민초들은 이렇게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것인지... 




   이러한 점은 조선시대가 아니라 지금 현대에도 마찬가지죠. 권력과 힘이 있는 자들은 법을 지키지 않고... 힘없고 굶주린 시민들은 지독한 잦대로 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을 보면요... 어쨋든 녹두꽃 정말 기대합니다^^




<출처. 네이버 전봉준 지식사전, 나무위키, 각종 포털 사이트 내용 참고>


2019/03/30 - [★☆방송리뷰☆★/기타:)] - 녹두꽃(조정석x윤시윤x한예리x최무성x박혁권).. 전봉준의 이야기!! 기획의도 및 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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