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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 조사의의 난

알풀레드 2022. 3. 2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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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군 이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동복 형인 이방간이 일으킨 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함에 따라 조선 제3대 국왕에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국왕에 오른 태종 이방원은 사병을 통해 정권을 장악했으나 반대로 사병이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 인지하였는데요. 왕족과 공신들의 사병을 혁파하고, 군권을 재편하여 삼군부로 재편하였습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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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이 추진한 사병 혁파 정책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나 하륜과 이숙번의 도움으로 결국 성공하였습니다. 여흥 민씨 집안의 지지를 받은 것도 큰 도움이 되었죠. 이렇게 조선의 기틀을 잡고 있는 사이 태조 이성계는 신덕왕후 강씨와 세자 이방석의 복수를 위해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덕왕후 강씨의 친척 조사의를 충동질하여 태종 이방원을 공격하려고 한 것인데요. 물론 역사적으로 남은 기록에는 공식적으로 태조 이성계가 군사를 일으킨 내용은 없지만 정확상으로는 이성계가 주도한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그 이유는 군사를 일으킨 동북면 지역은 신덕왕후 강씨와는 관계가 없는 지역으로 이성계가 변방의 군벌로 성장한 무대였기 때문에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합니다. 당시 태조 이성계 역시 함흥에 머물렀다고 전해집니다. 우선, 조사의라는 인물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조사의라는 인물은 신덕왕후 강씨의 친척으로 1393년 태조 2년 형조의랑이 되면서 역사에 이름을 올립니다. 그리고 1398년 첨제제사를 거쳐 안변부사가 되었으나,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후 이방원에게 찍혀 벼슬을 잃게 되었는데요. 당시 이성계의 눈치를 보던 이방원은 조사의를 풀어주고 안변부사로 복직시킨 후 동북면 지역으로 보내게 됩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동북면에 도착한 조사의는 즉시 동북면 지방의 호족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데요. 신덕왕후의 원한을 갚는다는 명분을 세웠으나 실질적으로는 태조 이성계의 뜻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조사의의 난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박순과 송류 등을 파견하였으나 패배하였고, 조사의의 반란군은 1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조정에서는 각 고을의 군사를 동원하여 그들의 진로를 저지하고 회유책을 쓰는 등 반란군을 분산시키는데 주력하였습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그리고 본격적으로 조선의 정규군이 출동을 하게 되는데요. 11월 27일 태종 이방원은 이숙번에게 4만의 군사를 주어 반란군을 진압하도록 하였고, 청천강에서 조사의의 반란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결국 조사의는 함경도 안변에서 사로잡혀 12월 7일 도성으로 압송되었고, 반란의 책임을 물어 처형당합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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