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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의 부인, 원경왕후 민씨(+ 장인 민제)

알풀레드 2022. 3. 2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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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 씨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갈등은 결국 여흥 민 씨 가문의 몰락을 자초하게 되는 사건으로 번지게 되는데요. 이방원이 대업을 이루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민 씨는 왜 몰락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권력의 비정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볼 수 있습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좌: 원경왕후 민씨(박진희), 우: 이방원(주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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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 민씨 가문은 고려 시대 대표적인 정치세력인 권문세족으로 명망이 높았다고 합니다. 특히, 여흥 민 씨 가문의 수장인 민제는 고려의 주요 요직을 거치면서 정치적 입지가 탄탄한 인물이었죠. 그런 민제의 차녀로 태어난 민 씨는 어려서부터 아름다운 미모와 뛰어난 학식을 겸비한 인물로 평가받았습니다. 민 씨의 아버지 민제가 성균관에서 사성을 지내며 제자를 양성하던 시기 이방원이 진사시를 통과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는데, 그를 사윗감으로 눈여겨보았다고 합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여흥 민씨 일족)

 

당시 이방원은 일개 변방의 무사 집안의 아들로 여흥 민씨 집안과 급이 달랐지만 이성계가 고려의 영웅으로 추앙받으면서 신흥 군벌로 떠올랐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1383년 민 씨는 18세의 나이로 두 살 연하인 이방원과 혼례를 올리게 되는데요. 이방원은 장인인 민제의 집에 머물러 생활하였습니다. 이방원은 민 씨를 매우 사랑하였고, 민 씨 역시 자신보다 어린 남편을 존중하여 사이가 매우 좋았다고 전해집니다. 어쩌면 이 시기가 민 씨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기일 것입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민 씨는 권문세족 출신답게 사리에 밝은 그녀는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면서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편인 이방원이 정몽주를 격살하는 등 동복 형제들 중 가장 큰 공을 세움에 따라 자신의 남편이 후계자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인데요. 문제는 신덕왕후 강 씨의 모략에 의해 후계자 자리에서 밀리고 태조 이성계에게 버림을 받게 됩니다. 일설에는 이성계가 포은 정몽주를 품에 안으려고 하였는데,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아들인 이방원이 백정 짓을 했다는 사살에 크게 분노했다고 하죠. 

 

출처. 태종 이방원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민 씨는 정녕옹주에 봉해졌고, 이방원은 정안군에 책봉되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여흥 민 씨 일족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는데요. 동생인 민무구와 민무질이 정안군 이방원의 심복으로 활약합니다. 신덕왕후 강 씨가 태조 이성계의 지지를 받으면서 자신이 아들인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뛰어난 정치력을 보여주게 되는데요. 신의왕후 한 씨 소생의 아들들은 불만이 컸지만 제거당할 수 있었기에 조심해야 했습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신덕왕후 강씨가 병으로 사망하게 되면서 정국이 점차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하는데요. 명나라와의 외교가 마찰을 빚게 되고 정도전은 요동 정벌을 준비하면서 병권 집중을 집중시키기 위해 사병 혁파라는 카드를 꺼내게 됩니다. 당시 정안군 이방원에게 사병은 그야말로 목숨줄이었고, 생존을 위해 1차 왕자이 난을 일으키게 되는데요. 당시 민 씨는 집 안에 무기를 숨겨놓고 후일을 도모했다고 전해지며, 이 무기는 이방원이 거사를 일으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또한, 2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였을 때 이방원의 말이 집으로 홀로 돌아오자 남편이 죽은 줄 알고 창을 들고 나가 싸우겠다고 한 일화도 전해집니다. 그야말로 당대 여걸이었죠.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조선의 왕비가 되었으나 이때부터 인생에서 최악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출처. 태종 이방원

 

태종 이방원은 국왕이 되기 전 세자로 책봉된 시절부터 여흥 민씨 가문과 공신들을 매우 경계했습니다.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킬 때 자신을 절대적으로 지지해주었던 공신들 역시 정치적 선택을 한 것이고... 자신의 영리와 가문의 이익을 위해 참여한 인물이었기에...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는 일이었고... 1차 왕자의 난과 같은 일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이 태종 이방원은 정도전이 이루지 못한 사병 혁파 카드를 꺼내게 되는데요. 

 

출처. 태종 이방원

 

민 씨 역시 사병 혁파에 찬성하여 동생들에게 사병을 삼군부로 귀속시킬 수 있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드라마상에서 이 과정을 축약시켜 보여주지만 태종 이방원은 정치적으로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매우 심각한 과정을 거쳤을 것입니다. 실제로 정도전이 사병 혁파를 하려다가 사병들에 의해 목숨을 잃기도 하였죠. 빠른 판단력으로 태종 이방원을 지지하였던 민 씨와 동생인 민무구, 민무질은 사병 혁파를 하는 과정에서 공을 세워 정계와 군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데요. 

 

출처. 태종 이방원

 

태종 이방원은 훗날 세자가 보위에 올랐을 때 민 씨 가문이 외척으로서 권력을 틀어쥐게 될 것을 우려하여 그들을 제거할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양위 파동을 일으켰으며 민무구, 민무질 그리고 아랫 동생인 민무휼, 민무회 형제를 정사를 농단한 죄를 물어 죽이게 됩니다. 당연히 원경왕후 민 씨와의 불화가 매우 커졌고, 중전에서 폐위할 생각까지 했다고 전해집니다. 태종 이방원은 원경왕후 민 씨와 여자 문제로 매일 같이 다투었다고 하네요. 일설에는 원경왕후 민 씨와의 불화가 그녀의 집안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하지만 태종 이방원은 여흥 민 씨 집안이 외척으로서 권력이 커지는 것을 절대로 그대로 눈감아주지 않았을 것이며, 그 시기가 앞당겨진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출처.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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