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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124회:) 선감학원(+임용남 목사, 삼청교육대, 형제복지원)

알풀레드 2024. 4. 1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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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124회:) 선감학원

 

18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124회에서는 "그 섬에 아이들이 있었다"라는 제목으로 선감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1982년까지 약 40년 동안 존재했던 곳으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 있는 선감도라는 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소년들이 이곳에 갇힌 후 지옥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하는데요. 과연 그날 선감학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124회

 

1941년 10월 미나미 지로라는 이름을 가진 총독은 선감도에 부랑아로 지목된 소년 수백명을 잡아들인 후 가두었습니다. 일명 거리의 불량아들을 감화시킨다는 목적으로 선감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끌려오게 되었는데요. 실상은 항일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과 정치범, 사회주의자 등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가둔 것이라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잡범이나 이유 없이 일반 청년들도 끌려오게 되었는데요.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1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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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도에 끌려온 청년들은 격리되었으나 선감학원에서 일반 학교와 동일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부보다는 강제 노역에 시달리거나 갖은 고문을 당하기 일쑤였는데요. 이런 일제의 만행을 견디다 못한 소년들은 탈출을 시도하지만 파도에 휩쓸려 대부분 익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죽은 소년들의 시신은 원생 공동묘지에 매장당했습니다. 정말 억울한 죽음이었죠. 또한, 살아남은 소년들은 전쟁 말기 강제징용되거나 군사 훈련을 받은 후 전쟁터로 내몰렸습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124회

 

진짜 문제는 광복이 된 후였습니다. 선감학원에 억울하게 끌려온 소년들은 선감학원에서 퇴소하여야 했지만 그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 받은 정치인들은 부랑아 수용시설로 운영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감학원 주변에 사무실과 관사 등이 신축되었습니다. 강제로 전국의 거리 부랑아들을 마구잡이로 모아서 수용시켰고, 억울하게 갇힌 어린이나 청년들이 상당수였다고 전해집니다. 즉 선감학원의 시스템은 삼청교육대나 형제복지원의 모태라고도 할 수 있죠.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124회

 

선감학원에 수감된 아이들은 일제강점기에 행해졌던 고문과 강제 노역이 그대로 행해졌고, 농업과 양잠 등 할당량이 주어졌는데, 만약 이행하지 못한다면 끔찍한 폭행이 가해집니다. 문제는 당대 경찰들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거리에서 조금만 불량해 보이거나 힘없는 이로 보이면 강제로 잡아갔다고 합니다. 선감학원을 경영하는 원장은 대통령과 같은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지죠.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124회

 

선감학원의 비윤리적인 행위는 임용남 목사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집니다. 임용남 목사는 선감학원에서 지옥 같은 생활을 버티다가 섬에서 탈출한 것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정권의 압력으로 이슈가 금세 사라졌으며, 현대와 와서 과거정리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하였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등 복구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이야기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다룰 예정이라고 합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1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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