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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등장인물:) 헌애왕후(+실존인물, 천추태후, 목종, 가계도, 김치양, 죽음, 유행간)

알풀레드 2023. 11. 1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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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11월 11일부터 방영될 예정입니다. 고려거란전쟁은 고려와 거란족의 요나라가 충돌한 여요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요나라는 총 3차에 걸쳐 고려를 침공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고려의 영웅들이 출현합니다. 대표적으로 1차 여요 전쟁은 서희, 2차 여요 전쟁은 양규, 3차 여요 전쟁은 강감찬 등의 영웅이 등장해 고려를 지켜내게 되죠. 이런 요나라의 침공의 이야기에 앞서 고려의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목종 재위 시기부터 이야기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때 가장 강한 권력을 가졌던 천추태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고려거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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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공주에서 왕비로

 

천추태후, 즉 헌애왕후는 964년 태조의 아들인 대종 왕욱과 선의왕후 류씨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인 대종과 어머니인 선의왕후가 일찍이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인 신정왕후의 손에서 자라게 되는데요. 경종이 즉위한 후 사촌 관계였던 헌애왕후 황보씨가 여동생 헌정왕후(제4비)와 함께 경종과 결혼하게 됩니다. 당시 고려는 창업 군주인 왕건 때부터 호족 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해 유력 가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황실과 유력 가문의 결혼으로 후대에는 사촌 간에 결혼을 하는 것이 흔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종의 결혼 상대로 황주의 호족인 황보씨에서 두 명의 비를 맞이한 것은 그만큼 황보씨의 영향력이 막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고려거란전쟁

 

 

경종의 죽음, 김치양과의 만남

 

경종은 광종의 뒤를 이어 고려의 대왕에 올랐습니다.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지방 호족들과 결혼 동맹으로 통합을 이루었다면 광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호족과 공신들을 대대적으로 숙청을 가함으로써 피의 군주가 되었습니다. 광종의 숙청 작업의 결과 고려의 기틀을 다질 수 있게 되었으며, 후계자였던 경종은 대숙청으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던 조정을 안정시켰습니다. 하지만 26세의 어린 나이로 요절하면서 헌애왕후만이 유일한 후손인 목종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목종이 태어난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헌애왕후의 동복오빠인 성종이 즉위하게 되죠. 

 

출처. 고려거란전쟁

 

성종의 재위 기간 중 거란의 소손녕이 침입해 큰 위기에 봉착하였으나 서희의 활약으로 강화를 맺고 강동 6주를 얻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성종은 비교적 젊은 시절에 즉위를 하였는데, 선왕 경종과 친동생 천추태후를 배려하여 왕송(목종)에게 자신의 '개령군' 봉호를 물려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선왕의 아들은 숙청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해볼 때 상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물론 만약 든든한 후계자가 있었다면 숙청되었을지도 모르죠. 슬하에는 딸만 2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선종이 죽은 후 목종이 제7대 국왕에 즉위(997년)하게 되는데요. 

 

출처. 고려거란전쟁

 

이 과정에서 헌애왕후가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목종이 태어난 지 1년 만에 과부가 된 후 어린 아들과 함께 숭덕구에 머물면서 외족이었던 김치양을 만납니다. 당시 김치양은 스님의 모습으로 헌애왕후와 만났다는 기록에 근거하면 화엄종 승려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훗날 헌애왕후는 불교에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게 되는데, 든든한 지지세력이었던 것으로 보이네요. 그리고 이러한 불교 세력의 지지를 얻어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죠. 

 

출처. 고려거란전쟁

 

문제는 헌애왕후와 김치양의 사이에서 불미스러운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실제로도 두 사람이 눈이 맞았다는 사실이 훗날에 밝혀지게 되는데요. 헌애왕후가 김치양의 아들을 낳는 막장 스캔들이 발생하게 되죠. 성종 재위 시기에 헌애왕후와 김치양은 비즈니스적 관계로 만난 것으로 보이는데, 성종의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왕위를 노리던 왕족들의 영향으로 김치양이 유배를 가게 됩니다. 

 

출처. 고려거란전쟁

 

천추태후, 섭정을 시작하다!

 

성종이 죽고 헌애왕후의 아들이 목종으로 즉위하면서 그녀는 '응천개성정덕왕태후'가 되고 천추전에서 섭정 태후가 됩니다. 이로 인해 그녀를 천추태후라고 부르기 시작하죠. 문제는 스캔들이 있었던 김치양을 불러들여 벼슬을 내립니다. 7품 합문사안을 내린 후 거듭 승진시켜 상서우복야 판삼사에 오르게 되는데요. 이는 곳 인사권과 재정권을 한 손에 쥐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고려 정계의 핵심 인물로 부상한 김치양은 지위를 이용해 횡포를 부리고 재산을 축적하면서 죄 없는 신하들을 모함해 제거합니다. 또한, 제멋대로 백성들을 동원해 자신의 집과 호수 공사에 이용했고, 노임을 주지 않는 등 온갖 행패를 저질렀습니다. 

 

출처. 고려거란전쟁

 

목종은 김치양의 전횡을 알고 제어하려고 했으나 어머니인 천추태후로 인해 번번히 실패하고 좌절하게 되죠. 그렇기에 목종은 정치에 관심을 잃고 유행간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의 권력을 나누어 주는데요. 또 다른 권신을 키워내는 계기가 되죠. 이러한 상황에서 천추태후는 김치양과의 관계를 통해 아들을 낳는 최악의 사태를 만듭니다. 김치양이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음모를 꾸미게 된 것이죠. 이런 상황을 눈치챈 목종은 즉시 서북면 도순검사 강조를 개경으로 불러들여 김치양을 제거하지만 그의 쿠데타로 폐위를 당하게 됩니다.

 

출처. 고려거란전쟁

 

 몰락.. 그리고 죽음

 

강조는 김치양과 관계된 핵심 인물들을 모두 나라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처형하고, 천추태후는 황주로 유배를 보냅니다. 그곳에서 21년을 생활하다가 개경으로 돌아와 1029년 66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천추태후는 생전에 대량원군(현종)을 미워해 그를 죽이려는 시도를 했었는데, 그 위협을 이겨낸 후 목종의 후계자가 된 현종은 어떠한 위협도 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죠. 그녀와 목종의 가계도는 특별한 내용이 없습니다. 선왕이었던 경종과의 사이에서 목종을 낳았고, 김치양과의 불륜으로 아들을 하나 낳았죠. 목종은 자녀가 없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출처. M16

 

평가

 

천추태후는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고려사에는 헌애왕후를 김치양과 사통해 왕실과 나라를 어지럽힌 음탕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죠. 이는 성리학적 관점을 가진 조선시대에는 더욱더 가혹하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죠. 현대에 와서 재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목종 재위 기간 중 업적은 섭정을 맡은 헌애왕후의 공이었다고 말이죠. 그리고 그녀가 여요전쟁의 승리에 기여했다며, 고려를 대제국으로 만들려는 포부가 가득한 인물로 그리기도 하는데요.

 

출처. 천추태후

 

개인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소리로 보이네요. 우선적으로 왕실의 섭정태후로 귄위를 유지하기 위해 친위 세력을 만들려는 시도는 이해가 되지만 김치양을 밀어줘서 권신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는 진나라 영정이 재위하던 시절 조희가 노애를 총애해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었던 것과 비슷한 행보를 보여주죠. 섭정기간 동안 아들인 목종이 훌륭한 성군이 되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어야 했지만 권력을 놓을 생각이 없었고 김치양과 함께 다른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시도를 하다가 강조의 정변으로 몰락하고, 목종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동정을 받은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목종이 나라를 운영하는데 특별한 결점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점으로 남게 된 것이죠. 유행간과의 관계로 정치에서 멀어진 계기가 천추태후인 점을 감안할 때 고려에 미친 부정적인 부분이 더욱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천추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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