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리뷰☆★/고려거란전쟁:)

고려거란전쟁 배경(+여요전쟁, 만부교 사건, 야율아보기, 성종)

알풀레드 2023. 10. 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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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23년 11월 11일부터 KBS의 34번째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방영될 예정입니다. KBS 공사창립 50주년 & 대한민국 방송 96주년 특별 제작 드라마인 만큼 최신 기술을 동원한 대규모 스케일 연출이 예고되어 있는데요. 드라마 방송 전 고려사열전을 중심으로 고려 거란 전쟁의 배경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고려-거란 전쟁은 993년, 1010년, 1018년에 고려와 요나라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을 의미하며, 줄여서 여요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요전쟁은 두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인데요. 왜 고려와 요나라(거란족)가 전쟁을 벌이게 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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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경

1) 고려

고려는 왕건이 태봉의 궁예를 역성혁명으로 몰아내고 신라와 후백제 등 후삼국시대를 통일한 국가입니다. 고려 건국 당시 몽골과 만주지방에는 거란족과 여진족이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는데요. 거란족의 야율아보기가 여러 부족을 통일한 후 주변 국가들을 침공하자 경계하죠. 그러던 중 922년 야율아보기는 고려에 낙타와 말을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926년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키자 고려 태조는 발해 유민을 받아들이고, 발해를 공격한 거란에 대해 '금수지국'이라 부르며 적대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만부교 사건이 있는데요. 942년 요나라는 고려와 화친을 위해 사신 30명과 낙타 50마리를 보냅니다. 고려는 요나라 사신들을 모조리 섬에 유배 보내고, 낙타 50마리는 개경 만부교 밑에 묶어서 굶겨 죽입니다.

 

출처. KBS 드라마 태조 왕건

 

만부교 사건으로 요나라와 고려 사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하는데요. 태조는 거란과 발해는 우호적인 나라였으나 거란이 갑자기 발해를 무도하게 멸망시켰다며, 짐승의 나라라고 표현할만큼 비하합니다. 그리고 훈요십조에 거란은 금수의 나라이니 그 의관을 본받지 말라고 전하였죠. 이런 행위를 한 이유는 발해 유민의 정착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이유가 컸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호족사회였던 고려에서 왕건은 거란과의 긴장관계를 통해 호족들이 왕권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고, 중앙집권화를 꾀하려고 한 것이죠.  

 

출처. KBS 드라마 대조영

 

만부교 사건 이후 고려는 북진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왕건의 뒤를 이은 정종과 광종은 정예군을 양성하고, 군사시설을 갖추는 등 거란의 침입에 대비합니다. 또한, 송나라가 건국된 후 송과 화친정책을 실시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986년 발해의 부흥 세력이 세운 나라인 정안국이 거란에 멸망당합니다. 그리고 거란은 991년 고려 침공을 위해 위구, 진화, 내원 등 압록강 유역에 성을 쌓고 고려 침공을 준비하는데요. 993년 10월 요나라의 소송녕이 대군을 이끌고 고려에 침공함으로써 여요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출처. doopedia.co.kr .

 

2) 중국

중국은 만리장성 북측에 있는 유목민족들을 두려워 했습니다. 필요에 따라 돈으로 평화를 사기도 하였는데요. 이와 함께 이이제이(오랑캐를 이용해 다른 오랑캐를 제압한다) 정책을 고수해 왔습니다. 그리고 유목 민족이 힘이 약한 시기에 힘을 기르지 못하도록 초원을 불태우거나 힘이 있는 부족이 생겨나면 다른 부족을 이용해 제거하는 방법을 활용하면서 그들을 관리합니다. 거란인은 이런 상황이 너무 힘들었으나 중국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죠. 

 

출처. 커뮤니티 사이트

 

이런 상황에서 당나라가 멸망하고 오대십국 시대가 도래하면서 거란족에게 큰 기회가 다가옵니다. 특히 야율아보기라고 하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해 순식간에 거란족을 통합하죠. 유목 민족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린 중국은 유목 민족의 성장을 지켜볼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거란족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후당 내부에서 분쟁이 발생하는데요. 황제를 꿈꾸던 석경당이 거란족의 태종을 끌어들여 내전을 벌입니다. 거란족의 개입 전에는 후당이 유리했으나 거란군 5만 명이 등장하면서 패배하게 되는데요. 석경당은 후진의 황제가 되었으나 거란족의 제후가 되는 굴욕을 당합니다. 그의 즉위식에서 요태종이 직접 석경당에게 거란식 의복을 입혀주었다고 하죠. 이와 함께 연운 16주를 거란족에게 통째로 넘겨주면서 중국에서는 매국노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출처. 커뮤니티 사이트(석경당)

 

연운 16주는 거란이 중원에 진출하는 교두보가 되었고, 중원은 내내 유목 민족들에게 시달리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송나라 시기에는 2개의 주만 간신히 찾았으며, 훗날 명나라가 몽골족을 쫓아내면서 되찾았다고 합니다. 연운 16주가 중요한 이유는 만리장성 바로 이남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북 지방은 대부분 평야이기 때문에 유목 민족들이 전투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고려의 경우에는 요충지가 뚫려도 산지가 많기 때문에 곳곳에 산성을 쌓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있지만 중국은 만리장성이 뚫리면 그야말로 무방비가 되기 때문에 연운 16주를 빼앗긴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죠. 

 

출처. 커뮤니티 사이트(송태조 조광윤)

 

960년 조광윤이 오대십국시대를 종결시킨 후 송나라가 건합니다. 조광윤은 장수 시절부터 거란족을 물리치는 전공을 세우는 등 상당한 군재를 가진 인물이었는데요. 태조 사후 보병이 주력이었던 송나라는 기병 위주의 거란족에게 유린당하기 일쑤였습니다. 특히 유목 민족을 막아주는 만리장성이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 매우 어려운 상황을 겪게 되죠. 이에 중국 전통 유목 민족을 다루는 방식인 이이제이 방식을 쓰는데요. 고려와 손을 잡으려는 시도를 하지만 고려에서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겨우겨우 거란족과의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서 전황이 소강 상태가 되자 전연의 맹을 맺기도 합니다. 

 

출처. doopedia.co.kr

 

3) 요나라(거란족)

907년 야율아보기가 거란족을 통일합니다. 그리 만주 내 해족, 습족, 실위를 정복하고, 서하와 하서회골, 조복을 복속시킨 후 만주의 패권을 두고 대립하던 발해를 공격해 멸망시켜 만주 지역을 장악합니다. 916년 야율아보기는 국호를 거란(키탄:Khitan)이라고 칭한 후 요하 상류에 위치한 임황(현 츠펑시)을 도읍으로 삼아 스스로 칸(황제)의 지위에 오릅니다. 당시 중국은 당나라가 멸망하고 송나라가 다시 통일하기 전까지 오대십국시대로 분열하여 대혼란의 시대가 도래하였죠. 이런 혼란을 틈타 활발한 정복활동을 시작합니다. 서쪽의 돌궐, 탕구트, 사타부 부락을 평정하고, 중국 황하 이북으로 친히 원정길에 올라 큰 전과를 이루죠.   

 

출처. 커뮤니티 사이트(야율하보기 동상)

 

922에는 신생 국가였던 고려에 사신을 보내고, 주변 지역의 나라들에게 조공을 바치도록 합니다. 그리고 중국의 문물을 받아 들여 거란 문자를 창제하고, 농업을 발달시키는 등 유목민족의 한계를 청산하고 대제국을 만들기 위한 기틀을 다지기 시작하죠. 이후 몽골지역을 정벌하기 위한 서방 정책을 실시하였고, 발해를 침공해 항복을 받아냅니다. 926년 발해의 항복을 받아 동쪽의 거란국이라는 뜻의 동란국을 세우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야율아보기는 붕어했고, 야율요골(태종)이 뒤를 이어 칸에 즉위합니다. 936년 석경당의 후진은 스스로 거란의 제후국이 되었고, 군사를 빌린 대가로 하북의 연운 16주를 바칩니다. 연운 16주를 얻은 거란국은 나라의 명칭을 요로 변경합니다.

 

출처. 커뮤니티 사이트

 

요나라는 몽골과 만리장성 이남 연운 16주, 만주를 지배하는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게 됩니다. 하지만 연운 16을 점령한 후 하남성 일대도 점령하였으나 한족들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 이를 진압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밀려납니다. 또한, 만주에서는 요동, 연해주와 발해 지방에서 여진족과 발해 유민들이 지속적으로 반란을 일으켜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 당면합니다. 이때부터 태종은 중국의 정치적 상황과 경제, 문화, 행정 등을 경험하면서 중국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위해 연운 16주와 정주민들을 대상으로 통치 방법을 실험하였고, 중앙집권화된 제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죠. 

 

출처. doopedia.co.kr

 

태종 사후 세종, 야율찰할, 목종 등이 모두 살해당할만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당면합니다. 그리고 5대 황제인 경종이 거란족과 한족 장교들의 지지를 받아 즉위하였고, 경종은 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송나라와 수차례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죠. 비교적 젊은 나이에 경종이 사망하고, 뒤를 이어 요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성종이 즉위하게 되는데요. 현종은 행정 조직을 정비하고, 군사력을 신장시켜 영토를 확장시키는 정책을 실행합니다. 그러던 중 북송과 대규모 전쟁을 벌이기 시작하는데요. 북송을 정벌하기 후방에 인접한 고려를 복속시킬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출처. KOEI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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