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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 중종 시대 과거제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현량과 실시!

알풀레드 2019. 9. 8.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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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량과라는 제도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나요? 현량과는 조선 중종(1506-1544) 때 조광조의 건의에 따라 시행된 관리등용 제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국사 공부를 하다보면... 고려시대는 음서 제도라고 하는 특권층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임용제도가 존재하여 왔는데요. 




   고려 광종(949-975)은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러한 과거제는 왕권 강화에 중요한 정치적 기반이 되는데... 무훈공신들을 정치적으로 약화시키고... 군주에 대한 충성을 본분으로 하는 유교사상을 가진 신진인사들을 기용하여 왕권강화를 위한 개혁을 수행하는데 동력이 되어 왔죠. 




   강력한 왕권을 형성하였던 광종 시대 이후 여전히 음서제도가 주류를 이루게 되는데요. 음서제도로 처음 임용되는 관직은 이속부터 정8품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원칙적으로는 승진에 제한을 두었다고 하나 과거 등용자와 같이 5품까지 진출은 어렵지 않았죠. 그리고 신권이 강력한 시기 승진 제도의 제한이 유명무실해지고 재상까지 오르기도 하였으며... 이로 인해 문벌 귀족 중심의 사회의 세습이 이어져 쇠퇴의 길로 드러서는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하죠. 




   이로 인해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개국하는데 앞장선 신흥사대부(신진사대부)는 음서제도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죠. 조선 역시 음서제도를 계승하였으나... 당시 주류였던 신진사대부는 능력없는 븅x들이 관직에 오르는 자리로 보았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인재를 뽑던 과거제도가 유생들에게 성리학 본질에 대한 탐구 보다는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문제와 과거제 시행 과정에서 다양한 폐단이 발생되면서 조광조는 중종에게 현량과를 시행할 것을 건의합니다.




   현량과는 중국 한나라 시대 현령방정과를 모티브로 만든 것으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인재를 천거하여 대책만으로 시험보고 채용하는 제도를 의미하는데... 당시 과거제도를 기반으로 인재를 등용하던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이기에 상당한 반발에 부딪히게 됩니다. 




   현량과는 장/단점이 분명한 제로도 알려져있습니다. 현대로 치면... 과거제도가 수능제도로 본다면... 현량과는 내신제도(의미가 틀릴수 있음) 정도로 볼 수 있으며... 해당 대학에서 논술이나 면접만으로 입학할 수 있는 제도를 의미할 수 있죠. 당시 현량과로 등용되는 인재들이 사회 초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종6품, 종7품으로 등용되면서 조정에서 상당한 갈등을 겪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현량과로 천거되는 과정을 보면... 과거제도 못지 않게 다양한 관문을 거쳐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서울은 사관이 인재를 성균관에 천거... 성균관은 예조에 보고... 지방은 유향소에서 수령에게 인재 천거... 수령은 관찰사에게... 관찰사는 예조에 보고... 예조는 천거된 인물들에 대해 성명, 출생연도, 자와 함께 성품, 재능, 기국, 학식, 행실, 지조, 생활 태도, 현실대응 등을 기록하여 의정부에 보고하고... 최종 면접은 왕이 참석한 가운데 관리로 임용되는 과정을 거쳤죠. 현재로 치면...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 서류심사를 시작으로 실무면접을 비롯하여 임원면접, 회장면접 등을 보는 것이죠. 




   현량과는 과거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참다운 인재 선발을 위한 제도로 활용되었다고 하나... 결국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다지기 위한 포석에 불과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재를 천거하는 사람이 신진 사림세력으로 조정을 장악하기 위한 시도를 하였다고 볼 수 있죠. 현량과라는 제도로 당시 사림과 훈구파는 대립이 심화되었고... 사화가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합니다. 



<출처. 네이버 사전 및 왕이된남자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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