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된 왕이된남자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해치와 같은 사극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특히 해치의 경우 우리가 역사속에서 너무 잘알고 있는 연잉군 이금... 즉 훗날의 탕평책으로 유명한 영조 대왕이 젊은 시절 왕으로 오르기 위한 과정을 잘 담고 있는데요. 우연히 설민석 선생님이 들려준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를 잘 설명해주신 영상을 봐서 소개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일단 '사도' 라는 영화는 250년 전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사건... 혹은 왕이 세자를 죽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는데요. 이는 조선왕조 500년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를 통틀어보더라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희대의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영화' 사도의 주인공인 사도의 본명은 '이선'.. 영조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둘째 아들로 태어나는데요. 첫째 아들인 효장세자는 10살 되는 해에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사도세자 이선은 영조가 마흔한 살에 늦둥이로 낳은 자식으로 매우 귀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늦둥이로 태어난 이선... 영조의 기대와 사랑속에서 자라나지만.. 영조의 기대와는 달리 다른 쪽으로 소질이 발달합니다. 덩치가 커지고... 힘이 엄청나게 세져서 무술에 심취하게 되는데요. 당시 영조는 문치주의를 갈망하는 군주였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간에 사이가 벌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네요.
사도세자가 장성한 후 영조는 왕의업무를 대신 맡아보는 대리청정을 시키게 되는데요. 대리청정은 14년 동안 이어지고 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지게 됩니다. 어느날 사도는 영조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 오늘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라고... 그러자 영조는 '야! 그것도 못하고 네가 세자야? 너 자격 없어.'라며 구박을 받는데요. 이에 사도세자는 '아~ 내가 스스로 알아서 해야 되는구나' 라고 '아버지 오늘은 이런 저런 일을 처리했습니다' 라고 말하자...
영조는 '니가 왕이냐? 뭐 이런놈이 다 있어.. 그만 가봐' 라고 했다는데요. -0-.. 어쩌라는 것인지... 여쭤봐도 뭐라그러고.. 알아서 해도 뭐라하고.. 요즘 말로 소위 멘붕이 온 사도세자...
사도세자는 아버지가 두려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청심환을 먹지 않고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고... 나중에는 정신병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영화 사도를 보신 분은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을텐데... 내가 옷을 입으면 안되는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즉 옷을 입게 되면 아버지를 만나로 가야하니... 미치는 거죠. 한중록에서는 사도세자가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는 의대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옷은 궁녀나 내관이 입혀주었다고 하는데요. 옷을 입힐 때 옷이 살갗에 닿기만하면 칼을 꺼내서 옷 입히는 궁녀를 해치고... 쳐다본다고 내관을 죽이는 등의 살인을 저지르는 행위까지 일삼았습니다.
결국은 1762년 7월 4일 임오화변으로 사도세자는 작은 뒤주에 갇혀서 아버지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기서 아무리 자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혹은 정신병이 있더라도 어떻게 아버지가 자식을 죽이게 되었을까요?
설민석 선생님은 영조의 입장에서 사건을 다시 구성해주었습니다. 먼저 숙종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희빈 장씨로부터 이윤... 훗날의 경종과 연잉군... 훗날의 영조.. 두 아들이 있었는데요.
당시 장희빈의 아들인 이윤... 즉 경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당시 소론이 집권세력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하지만 경종은 후사가 없고... 평소 몸도 좋지 않고... 항상 피곤해 했다고 합니다.
이때 비집권 야당인 노론은 경종이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견하고 차기 대권주자인 연잉군에게 붙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후사가 없으니 세제로 책봉하고... 몸이 불편하지 대리청정을 하라고 압박하는데요. 현재 해치에서 이 과정이 잘 설명되고 있죠(물론 밀풍군 관련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대리청정을 하게되는 세제 연잉군... 이때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소론과 경종의 눈밖에 나기도 하고... 노론들은 여러가지 사화에 걸려 죽기도 합니다. 실제로 역모죄에 걸리기도 하였으나 겨우 살아남았다고 하죠.
그러던 어느날... 연잉군은 경종에게 감과 간장게장을 올렸는데... 시름시름 앓던 경종이 죽게 됩니다. 이로 인해 영조는 평생동안 형을 죽인 사람이라는 의혹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어쨋든 경종의 뒤를 이어 왕이된 영조...
평생동안 3가지 컴플렉스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첫번째가 천민의 자식이라는 것... 즉 무수리 출신인 숙빈 최씨에게서 난 자식이라고 공격을 받습니다.
두번째는 경종대왕... 즉 형을 독살한 왕이라는 오명을 씁니다. 이 독살설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으며... 당사자인 영조만 아는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영조가 죽였다고 말을 했다고 하네요. 오죽하면 영조는 자기가 한게 아니라며 천의소감이라는 책에 그 내용을 썻다고 합니다.
끝으로 노론이 세운 왕이라는 것입니다. 즉 노론은 연잉군을 꼭두각시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에 영조는 이러한 위기를 헤처나가기 위해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게 되었다고 해요. 이러니 성격이 예민하고 까칠해지고 깐간해질 수 밖에 없죠.
채식위주의 식단으로 소식을 하고... 하루에 15시간 이상되는 살인적인 정무를 하면서도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41세가 된 영조에게 늦둥이 자식 사도세자 '이선'이 태어납니다. 영조는 아들이 너무 예쁜 나머지 태어나자 마자 세자로 책봉을 합니다. 이것이 곧 비극의 시작이 됩니다. 어린 아이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야 하는데 세자로 책봉되자 동궁으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당시 세자가 머무르는 동궁은 왕실의 동쪽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떠오르는 태양이다'라고 해서 '동궁전'에 머무른 것이죠.
동궁으로 가게된 세자... 이때 사도세자를 보살피는 보모를 자기가 죽인것으로 믿고 있는 경종 사람들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보모들은 아버지와 자식을 이간질 시키고.. 무술을 가르치는 등의 행위를 했다고 합니다.
사도세자의 부인이었던 혜경궁 홍씨의 기록 '한중록'을 보면 그것이.. 세자를 일찍 책봉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자식과 아들의 대화가 단절되었다고 하는데요. 보통 하루에 3번씩 인사를 하로 찾아오는 세자가 6개월 나중에는 1년동안 찾아오지 않자..
대화가 단절되고.. 불통은 의심과 오해를 낳게 됩니다. 이때 이런 소문이 돌았다는데요. 세자가 궁궐 밖으로 놀로 나가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내관과 궁녀를 죽이는 연쇄살인까지 저질렀다는 것인데요.
영조는 이때 아들 사도세자를 불러 진솔한 대화를 했다고 합니다. 이때 사도세자는 '아버지에게 울화증이 치민다며... 아버지나 날 사랑하지 않으셔서 짐승이나 사람이나 닥치는 대로 죽이지 않으면 내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다는데요. 이에 영조는 자신을 끌어않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것도 잠시... 다시 4년 동안 대화 단절.. 불통의 시기가 찾아오고... 결국 사도세자의 입에서 '내 우리 아버지를 어찌 어찌 해치우고 싶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요. 결국 이 말은 화근이 됩니다.
이말은 결국 영조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영조는 숙종의 사당에 가서 역적을 처단하겠다고 고한 후... 칼을 차고 가서 자결을 권하는데요. 하루종일 실랑이 한 끝에 답이 나오지 않자.. 결국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고 사도는 8일 뒤에 주검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도세자는 영조의 손자 이산.. 즉 훗날의 정조가 왕이 된 이후 추모되었고.. 훗날 1899년 왕(장조)로 추존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듣고보면 너무 슬픈 역사인데요. 설민석 선생님이 너무 잘 설명을 해주셨어요!!ㅎㅎ
<출처. 설민석 강의 내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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