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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97회:) 1984 서울 대홍수(+소양강댐, 박명학, 꼬꼬무)

알풀레드 2023. 10. 1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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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97회에서는 1984년 서울에서 발생한 대홍수 편을 다룰 예정입니다. 이번 장트리오의 이야기에는 그룹 엘즈업 예은, 소녀시대 효연, 축구선수 조현우가 함께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대홍수가 발생한 서울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예고편을 살펴볼까요?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9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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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에 등장한 서울의 모습을 그야말로 충격적인데요. 수많은 건물들이 물에 잠겨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때는 8월 말에서 9월 초까지 중부지역에는 집중호우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소양강댐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비가 내렸고, 상류부터 흘러온 물은 소양강댐의 계획홍수수위를 넘나들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전두환 정권은 소양강댐 사수에 나섰다고 전해집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97회

 

1973년 준공된 춘천의 소양강댐은 세계 5위 규모의 사력댐(모래와 자갈을 쌓아 만든 터)으로 서울 수도권 지역의 홍수 조절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집중호우로 인해 소양강댐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 당면한 것이죠.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태풍 '준'의 영향으로 시간당 50mm의 비가 내렸고, 태풍이 지나간 후 강원산간에 폭우가 집중되었습니다. 특히 춘천지역은 일주일 동안 200mm가 넘는 비가 끊임없이 내렸다고 하죠.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97회

 

당시 대홍수로 재산피해만 2000억원이었고, 서울을 중심으로 주택 2만 채가 침수되었으며, 9만 명이 대피하였고, 서울-강원-경기지역에서 190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비상상황에서 소양강댐지사의 직원들은 비상근무를 서고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박명학 씨는 당시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97회

 

소양강댐 수위가 한계에 도달하자 방류를 해 수위를 낮추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양강댐이 문을 열면 서울을 비롯한 한강 하류 지역은 초토화될 위기에 처하게 되죠. 소양강댐 수문 개방 여부는 한국수자원공사 본사와 소양강댐 지사, 한강홍수통제소가 협의하여 결정하는 사안입니다. 서울이 물바다가 된 상황에서 소양강댐은 수도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셈이죠.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97회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소양강댐에서 최대한 막아보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집중호우로 인해 상류 댐 수위는 계속해서 차고 있고, 발전소에 물이 차기 시작하면서 최악의 상황에 당면하게 됩니다. 소양강댐지사와 한강홍수통제소 간 마지막 결정을 위해 고성이 오가기도 합니다. 결국 소양강댐지사에서 발전소를 포기하겠다고 말했고, 본격적인 방류가 시작되었는데요. 소양강댐 만수위 203m를 불과 5m를 남겨둔 198m였다고 합니다. 만약 조금만 더 늦었다면 댐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97회

 

하지만 방류를 하였음에도 수위는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나가는 물의 양보다 들어오는 물의 양이 더 많았기 때문이죠. 직원들은 며칠 간 고립된 상황에서 비상식량을 먹으면서 버텼고, 자신들을 덮쳐오는 물을 막기 위해 자갈을 쌀 포대에 담아 쌓았다고 합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97회

 

박명학씨와 함께 일하던 부장은 직원들에게 댐 수위가 200m를 넘기면 다 나가라고 말한 뒤 자신들이 죽으면 비석을 세워달라고 말합니다. 그 순간 기적적으로 댐 수위는 198m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고 비가 멈쳤으며, 댐 유입량과 방류량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그날의 생생 이야기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에서 어떻게 담아내게 될지 기대가 되네요.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9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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