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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림대군(+연인 실존인물, 장현, 효종, 가계도, 남한산성, 병자호란)

알풀레드 2023. 9. 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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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1636년(인조 14년) 12월 청나라의 태종(홍타이지)은 12만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공합니다. 이것을 병자호란이라고 부르는데요. 병자호란이 일어난 배경에는 다양한 원인이 존재합니다. 최근 휴먼역사멜로 드라마 "연인"에서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시청자들에게 가슴 아픈 역사에 대해 다시 한번 되뇌게 만들기도 하였죠. 연인에는 병자호란 당시 실존인물들이 다수 출연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삼전도의 굴욕을 겪은 인조, 의문의 죽음을 당한 소현세자, 소현세자의 뒤를 이어 세자에 오른 봉림대군 등이 있죠. 그중 훗날 효종에 즉위하는 봉림대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영화 창궐(봉림대군의 모티브 강림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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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자호란 패배 후...

정묘호란이 끝난 지 약 10년 후 후금에서 청나라로 국호를 변경한 홍타이지(태종)는 조선을 굴복시키기 위해 전쟁을 준비합니다. 당시 조선은 일시적으로 후금과 명목상 형제 관계로 강화를 맺었으나 이에 대해 큰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척화론자들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고 하면서 후금을 배척하려는 태도를 취하였는데요. 홍타이지는 만주를 석권한 후 명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자 배후에 있는 조선이 위협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출처. 영화 남한산성

 

청나라는 조선에 사신을 보내 군신 관계의 요구와 함께 전쟁물자를 요구하는데요. 조선의 입장에서는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정묘호란 등을 겪으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을 겨우 수습한 상황에서 매우 부담스러운 요구였습니다. 청나라 요구에 당시 위정자들은 척화론(대표적으로 김상헌)과 주화론(대표적으로 최명길)으로 나뉘어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고, 인조가 척화론에 손을 들어주면서 긴장감이 돌기 시작하죠. 하지만 명분론에 입각한 척화론자들은 말만 앞설 뿐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결국 청나라의 침공에 대비하지 못한 채 결국 병자호란이라는 결과를 불러들입니다.

 

출처. 영화 남한산성

 

청나라의 국왕인 홍타이지(태종)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조선으로 친정을 하게 되는데요. 1636년 12월 1일 청군 7만, 몽골군 3만, 한군 2만 등 약 12만의 군대가 심양에서 출발해 조선으로 원정을 나섭니다. 조선은 정묘호란 후 각 산성에 방어 진지를 만들고 대비하였으나, 청군은 이를 무시하고 전격적으로 수도를 향해 진격합니다. 예상보다 빠른 공격에 인조와 대신들은 피난길에 오르게 되는데요. 우선, 세자빈 강 씨와 원손, 봉림대군, 인평대군 등 왕족과 원로대신들을 강화도로 보내고, 인조와 세자는 후발대로 강화도에 가려고 하였으나 청군이 너무 빨리 도착해 남한산성으로 가게 됩니다. 

 

출처. MBC 드라마 연인(인조)

 

남한산성에서 필사의 항전을 다짐하였으나 병력과 병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청군은 공격보다는 포위를 합니다. 그리고 의용군들이 모이는 곳을 기습해 와해시킴으로써 남한산성에 있는 이들의 희망을 없애버리죠. 결국 더이상 버틸 방법이 없었던 인조는 항복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선은 청나라의 속국으로 전락하게 되죠. 다행인 점은 청나라 내부에서 천연두가 돌아 회군이 급했기에 조선을 멸망시키기보다는 항복시키는데서 끝났다는 점입니다. 

 

출처. MBC 드라마 연인(소현세자)

 

병자호란 이후 수많은 조선인들이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인조의 적장자인 소현세자와 둘째 아들인 봉림대군 역시 청나라에 끌려가게 됩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청나라가 산해관과 서역을 공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소현세자에게 동행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때 봉림대군은 세자 신분이었던 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대신 가겠다고 말하였다고 하네요. 

 

출처. MBC 드라마 연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등은 청나라 수도 심양으로 끌려가 갖은 고생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장현의 도움으로 청나라에서 정착하는데 큰 도움을 얻게 되는데요. 장현의 도움을 받았던 봉림대군 즉 훗날 효종은 장현을 기용해 그가 죄를 지어도 용서를 해주었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숙종시기 장희빈의 몰락과 함께 장현도 몰락하게 되죠. 

 

출처. MBC 드라마 연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청나라에서 신문물을 접한 후 크게 감탄하게 됩니다. 특히, 소현세자는 서양의 신문물이 조선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봉림대군 역시 이러한 신문물을 받아들였으나 한편으로 경계를 합니다. 청나라는 소현세자가 생각보다 외교적인 능력이 있어 조선의 일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조선의 내정 부분 역시 인조보다는 소현세자와 상의를 할 정도였는데요. 이러한 사실을 들은 인조는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출처. 영화 창궐(인조)

 

■ 귀국, 소현세자의 죽음

청나라는 명나라를 멸망시킨 후 더이상 조선의 세자를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그를 귀국시키는데요. 인조의 병세와 함께 소현세자가 왕위에 오른다면 더효율적인 외교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치적인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인조는 소현세자가 자신의 왕위를 넘보는 정적으로 생각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소현세자가 귀국한 후 인조에게 신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자 상당한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출처. 영화 올빼미

 

소현세자가 조선에 귀국한 지 3달 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독살로 추정되는 내용이 담겨 있지만 현재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인조는 세자의 죽음으로 그 자리에 원손인 석철을 세워야 하지만 원빈 강 씨와 세손을 숙청한 후 봉림대군을 세자로 세우는 결정을 합니다. 매우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죠. 

출처. 영화 올빼미

 

■ 국왕에 오르다

봉림대군은 1649년(재위기간: 1649년 6월 ~ 1659년 6월) 국왕에 오르게 됩니다. 그가 죽은 후 효종이라는 묘호를 받았는데, 조선의 중흥을 이끌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효종은 북벌론으로 잘 알려져 있는 군주로 혼란스러운 조선의 상황을 수습하여 조선의 중흥을 다진 임금입니다. 

 

출처. 영화 창궐(봉림대군의 모티브 강림대군)

 

물론 효종의 국정 정책 중 북벌론은 정치적인 명분이었지 실행하기 힘들다는 사실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청나라가 전성기를 이루고 있는 정세속에서 조선이 아무리 무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죠. 다만, 북벌론이라는 명분 아래 대동법 확대와 흐트러진 조선의 정치 시스템을 바로 잡았으며, 이는 결국 왕권 강화로 귀결됩니다. 

 

출처. 영화 관상

 

지도자가 권력을 가지고 옳바른 방향을 잡으니 훌륭한 신하들이 모이기 시작하는데요. 이들과 함께 왜란과 호란으로 혼란스러웠던 민생을 안정화시킵니다. 또한, 북벌론에 입각한 군제 개편 및 군사 훈련 강화도 힘썼습니다. 그리고 청나라의 파병 요구에 따라 나선정벌에 출정해 성과를 얻기도 하죠. 

출처. 영화 관상

 

■ 사망

조선 중기 개혁을 이끌었던 효종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의 죽음은 의료 사고일 가능성이 있는데요. 효종은 얼굴에 종기가 나서 침으로 피를 빼내어 독기를 제거하는 처방을 받는데요. 치료를 위해 침을 놓았는데 얼굴에서 검붉은 피가 멈추지 않고 쏟아져 서둘러 지혈했으나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합니다. 현대 의학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침이 세동맥을 손상시켜 과다출혈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죠. 자연사가 아니라 사고사로 사망한 효종은 39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승하합니다.  안타까운 죽음이 아닐 수 없는데요. 효종의 죽음은 예송논쟁이라는 당쟁이 이어지는 직접적인 계를 만들게 됩니다. 효종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왕후 1명에 3명의 후궁이 있었고, 다음 국왕인 현종과 7인의 딸이 슬하에 있었습니다.

 

출처. 커뮤니티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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