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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993 서해훼리호 침몰! 선장의 행방은?

알풀레드 2021. 11. 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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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에 방송되는 SBS 시사/예능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정규방송 3회'에서는 '그 배를 탄 사람들, 1993 서해훼리호'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할 예정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8년 여 년의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사건이지만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는데요.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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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서해훼리호가 침몰하면서 공식적으로 29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어머니... 그리고 누군가의 아들과 딸로서 많은 사람들이 대규모로 사망함에 따라 전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서해훼리호는 1990년 10월에 건조된 110톤급 철선으로 부안과 격포 사이를 1일 1회 정기 운항선입니다. 정원은 승무원 14명을 포함한 221명이라고 하는데요. 여기서부터 뭔가 좀 이상한 점이 있죠. 사망자가 정원을 초과한다는 점입니다. 바로 서해훼리호가 침몰하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993년 10월 10일 9시 40분쯤 서해훼리호는 362명의 승객과 화물 16톤을 적재하고 위도 파장금항을 떠나 부안 격포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10시가 될 무렵 임수도 부근 해상에서 돌풍을 만난 서해훼리호는 회항하려고 뱃머리를 돌리는 순간 심한 파도에 충격을 받아 전복된 후 침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사고 당시 기상청에서 파도가 높고 강풍이 불며 돌풍이 예상되기 때문에 선박의 주의를 요한다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여객선 측은 무리하게 운행을 강행하였고... 결국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고가 일어나게 되었는데요. 여객선 측이 무리하게 운행을 하게 된 것은 바로 돈이었습니다. 정원보다 초과된 승객들이 서해훼리호를 이용함에 따라 강행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당시 서해훼리호는 정부 보조금으로 겨우 운항을 하던 노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순간 전국의 낚시꾼이 몰려들게 됨으로서 호항을 누리게 되었는데요. 정원 이상의 관광객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왕복 1회운행으로 감당이 되지 않았고... 많은 이용객들이 증편을 해달라고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사고 당시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음날 출근을 위해 무조건 적으로 해당 선박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어쩌면 승객들이 초과된 것만으로 결정적인 침몰의 원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사고 원인은 바로 멸치 액젓(9톤), 자갈(7.3톤)과 같은 과적의 문제가 있습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서해훼리호가 사고로 침몰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발견됩니다. 우선, 갑작스럽게 배가 침몰함에 따라 구명 장비를 제대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없었다고 하네요. 또한 9척의 구명정이 있었으나 정상적으로 작동된 구명정은 2척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사고 발생 후 즉시 구조 요청을 하였다면 피해자가 줄어들었을 수 있지만 구조 요청이 이뤄지지 않아 해양경찰과 119 구조대는 사고 발생 1시간 정도가 지난 후 도착하여 구조활동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인근 어선들이 구조활동을 하였다고 하네요.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탑승객 362명 중 292명이 사망하는 처참한 결과가 발생한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정부는 사고가 발생한 후 피해자 유족에 대한 보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서해훼리 측 역시 보상금을 줄이기 위해 유족과 법적 다툼을 하기도 했죠.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서해훼리호와 관련하여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언론이었습니다. 역대급이라고 할 수 있는 오보 사건이 있었다고 하네요. 바로 선장이 혼자 탈출해 집으로 돌아간 것을 본 목격자가 있다는 보도와 선장이 몰래 일본으로 밀항했다는 자극적인 기사를 양산했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백 선장이 아닌 그와 닮은 이를 착각해서 보도된 해프닝이었습니다. 선장뿐만 아니라 승무원 역시 사고 수습이 아닌 가장 먼저 도망을 쳤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선장은 사고 발생 5일 후 무선통신실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갑판장과 기관장 역시 구조 요청을 위해 노력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언론들은 즉시 사과문을 올렸지만... 유가족 마음에 든 피멍은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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