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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형제복지원 위치, 김용원 검사와 박인근 원장(꼬꼬무)

알풀레드 2021. 10. 2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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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부산 형제복지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돌아왔습니다. 앞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시즌 2를 끝으로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는 정규편성 되어 더욱더 재미난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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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 방영된 부산 형제복지원의 참상과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꼬꼬무에서 밝힌 부산 형제복지원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고... 이야기꾼들과 친구들은 피해자들의 아픔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부산 형제복지원의 참상을 밝혀낸 김용원 검사의 활약과 원장 박인근의 처벌 등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더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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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의 김용원 주임검사는 포수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이상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포수는 김용원 주임검사에게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데 뭔가 좀 이상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깊은 산중에 수십명이 투입되어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일부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공사 현장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갈 수 있었지만 김용원 검사는 사진을 찍어 놓고 사건을 파헤쳐보기로 결심했다고 하네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김용원 검사가 보기에 이건 중대한 범죄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단 한명을 갖다가 이렇게 감금하고 강제 노동을 시키는 것도 중범죄인데... 이렇게 집단적으로 강제 노역을 시킨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고... 즉시 수사에 착수합니다. 무려 168명이 6개월째 야산에서 강제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고... 이들은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세를 넓히기 위해 울산까지 복지원을 만들려는 시도를 한 것을 알아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그래서 김용원 검사는 부산 형제복지원으로 쳐들어갑니다. 압수 수색 영장을 받은 후 부산 형제복지원의 문이 열리는 순간 김용원 검사와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건물만 60채가 있는 작은 공화국이었다고 합니다. 공장, 교회, 학교, 이발소, 목욕탕 등 기초 생활 인프라까지 잘 갇추어 져 있었다고 하는데요. 전체 면적 8,759평의 작은 나라를 운영한 것이었죠. 이 곳의 위치는 부산시 북구 주례동에 있었다고 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수용된 인원은 3,164명... 미성년자는 900명이 넘는 것으로 확인되었는데요. 정말 기가 찰 노릇이네요. 숙소마다 철창, 자물쇠, 쇠사슬 등 온갖 장금장치들이 있었다고 하며... 정신병동과 장애인 소대까지 갇추어져 있었습니다. 이 소대에는 약물에 취한 사람들로 거의 좀비 같은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고 당시 동행 기자였던 허상천 씨가 증언을 하였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부산 형제복지원을 압수 수색을 하던 중 대형철제금고를 발견했습니다. 은행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대형철제금고를 열어보기 위해 검사가 열쇠를 달라고 했지만... 직원들은 줄 수 없다고 했답니다. 이에 검사는 즉시 산소 용접기로 금고를 열었는데요. 그 안에는 미화 5천 달라, 엔화가 546만 엔, 통장 30개 등이 있는뎅... 당시 금액으로 총20억 원이 있었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즉시 소환되는 원장... 원장은 김 검사에게 전혀 쫄지 않고... 당당하게 검사장을 데려오라면서 큰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그는 당시 정권과도 줄이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인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당시 박원장을 위해서 홍보 영상까지 제작되었답니다. 그 영상의 내용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히네요. 마치 박 원장 자신을 신격화하면서 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처럼 미화되어 있습니다. 당시 박 원장은 복지계의 살아있는 신화로 군림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부랑인들의 천사로 불려온 박 원장... 정말 드럽네요. 폭행과 협박으로 원생들을 통제하고... 그들의 피값으로 돈을 벌어들였던 박 원장... 그는 직업 군인 출신으로 군대 시스템을 복지원에 그대로 적용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복싱 광으로... 가난한 이들이 챔피언이 되어 집안을 일으키는 그런 스토리에서 복지원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하네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이는 당대 사회적 분위기도 함께 연계가 됩니다. 즉 부랑아와 걸인의 구호 대책에 대해서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수립하고 있었던 것이죠. 부랑인 시설을 만들어서 운영을 한다면 나라에서 많은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자활 명목으로 부랑아들에게 노동을 시켜도 된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이를 악용하였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이 시설을 짓기 위해서는 초기 자본이 필요한데... 이를 부랑아들을 이용해서 직접 건물을 짓는다면 돈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부랑아 모집은 내무부 훈령이라 공무원들이 도와주기 때문에...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도 세우게 되었다고 하죠. 그렇게 형제복지원은 점차 시스템화되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연웅이가 실종되기 1년 전... 박 원장은 그야말로 로또를 맞은 것과 같은 대박 사건이 생겨납니다. 바로 서울에서 88년 올림픽을 열게 된 것인데요. 정부는 해외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유입될 예정으로... 보기 싫은 인간들을 이참에 싹 다 치우기로 결정합니다. 이로 인해 과거 한번 다루었던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쫓겨나는 결과를 맞이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번 화의 제목인 '인간 청소'... 정말 많은 의미가 한 단어에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이 사건을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많은 공헌을 했던 한종선 씨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당시 부랑아들은 인간 쓰레기이기 때문에 형제복지원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통령 지시 사항이기 때문에 실적을 위해 경찰들은 더욱더 이런 부랑자들 단속을 했던 것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이렇게 하나의 불법적인 거대한 왕국이 된 형제복지원은 브레이크 없는 전차처럼 달리기 시작하는데요. 불법감금, 폭행, 성 폭행, 강제노역, 횡령 그리고 살인까지... 박 원장 쪽에서 주장한 바에 따르면 513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습니다. 박 원장은 이렇게 죽은 사람들은 다 자연사했다고 말했답니다. 와.. 정말 인간이 아니네요. 피해자들은 내부에 소각장이 있어서 죽은 사람들을 암매장하고... 소각했다는 증언을 쏟아내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사건을 조사하던 김용원 검사에게 한 통의 전화가 옵니다. 부산 시장은 박 원장을 풀어주라고 말하고... 검찰에서도 박 원장의 사건을 축소하라는 지시가 내려옵니다. 당시 김 검사의 증언에 따르면 검찰의 윗분들 뿐만 아니라... 언론에 관련 내용이 하나라도 올라오면 보안부대 장교와 안기부 직원이 득달같이 달려와 그를 괴롭혔답니다. 또한, 사무실과 집 전화는 모조리 도청되었습니다. 대통령까지 나선 일이니 김 검사는 얼마나 시달렸을 지... 과연 상상이 되지 않네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이렇게 까지 이 사건을 막는 이유는... 영화 1987에 나왔던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과도 연계가 됩니다. 한 대학생의 죽음으로 군사 독재 정권의 분노가 폭발한 상황에서 이 사건까지 알려지게 된다면 정권 입장에서는 존립에 큰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사건을 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국 부산 본원 수사는 건들지도 못하고 사건이 종결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김 검사가 처음 발견했던 울산 공사장에서 특수감금, 횡령 혐의 기소로 사건이 마무리가 되는데요. 결국 박 원장은 징역 2년 6개월과 벌금 0원으로 최종 판결을 받습니다. 출소 후 원장은 시설 이름을 바꿔서 계속 장애인, 정신질환환자 수용 시설을 운영했답니다. 그리고 형제복지원에 있던 아이들은 다른 시설로 보내졌고... 처음 등장했던 연웅이의 아버지는 일용직 일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하네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이들은 형제복지원에서 피해를 당했던 사실도 알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회적 시선은 이 곳에 감금된 사람들은 문제가 있어서 잡혀간 것으로 냉정한 판단을 하였고... 시설에 감금된 사람들은 2차 피해를 받게 된 것이죠. 또한, 기업에서도 이 사람들을 채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2012년 한 남자는 국회 앞에서 피해 사실을 알렸는데요. 한종선 씨가 용기를 내어 세상에 이런 사실을 알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당시 가해자들을 더이상 처벌할 수 없다고 하네요. 이런 피해를 당했던 아동들이 이제는 어른이 되어 진실을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벌어지게 된 인권 유린 현장...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네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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