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정보☆★/중국:)춘추전국

[손자대전(삼령오신)] 춘추시대 대표 병법가! 손자병법을 집필한 손무는 누구?

알풀레드 2019. 2. 3. 23:08
반응형

[손자대전(삼령오신)] 춘추시대 대표 병법가! 손자병법을 집필한 손무




   안녕하세요^^ 오늘은 춘추시대 대표 병법가로 잘알려진 손무에 대해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손무라는 인물은 손자병법이라는 병법서를 집필한 인물로 중국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친숙한 인물일 것입니다. 손무에 대한 일대기를 담은 드라마도 많이 만들어졌으며 대표적으로 2008년 작품인 손자병법과  2011년 작품인 손자대전이 있습니다.


<손자병법 드라마>

<손자대전>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에 춘추시대를 호령했던 손무는 어떤 사람이길래 현대에 와서도 계속해서 회자가 될까요? 손무라는 인물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손무는 일반적으로 제나라 낙안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설에는 오나라 출신이라고도 합니다. 고대사에 등장하는 인물인만큼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보통 기원전 544 - 496년도 쯤에 활약을 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죠. 


<손자대전>


   손자가 오나라 혹은 역사에 등장한 부분을 살펴보면 정말 드라마틱 합니다^^ 초나라 평왕 시절 간신 비무기에 의해 멸족을 당하게 되는 오자서는 복수를 위해 오나라에 의탁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개죽음을 당한 위기에 처하지만 복수를 위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죠. 그리고 오나라에서 공자 광과 결탁하여 오왕 요를 살해하고 새로운 왕을 세웁니다. 


 

<오자서(위키백과)와 합려(한국인문고전연구소)>



   왕위 교체 과정에서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한 후 오왕 합려(공자 광)와 오자서는 군대를 통솔한 장군을 필요로 하게 되고... 오자서는 오나라에 명사가 은거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후 손무와 교제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손무의 탁월한 군사 능력을 알아채고 합려에게 천거를 하게 되죠. 일반적인 드라마에서는 오자서의 천거를 받은 합려는 별로 탐탐치 않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손자대전>


   그도그럴 것이 이 당시에는 인재를 등용하는 과정이 과거제가 아니라.. 호족이나 지배계층의 주변 인물 혹은 지역의 명사들에 의해 인재가 등용되던 시기로 이 당시 손무가 무명이었거나... 합려가 손무를 시험한 것으로 추론을 해 볼 수 있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 부분도 오자서가 타국에서 발탁된 인재인만큼 붕당 세력을 만드는 것을 견제했을 수도 있구요. 


<손자대전>



   오자서가 손무를 천거하는 과정에서 드라마에서는 왕이 친히 방문을 해서 현자를 모셔야 한다고 권하기도 하고... 소설에서는 사두마차를 보내서 모셔왔다고 표현을 하고 있지만.. 정확히는 알길이 없습니다^^ 다만 합려와 손무의 만남은 오나라가 강성해지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죠.  


<손자대전>



   합려는 손무를 만난 후 본격적으로 채용 면접을 보는데... 이때 손무는 자신의 병법서 13권을 진상을 한 것으로 사기에 실려있다고 합니다. 여러 매체를 살펴보면 당시 공공연하게 손자병법서가 돌아다닌다는 말도 있고... 혹은 합려와의 만남에서 세상에 등장하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손자병법서를 본 합려는 감탄을 하였다고 하며... 이론과 실제 전투가 부합하느냐에 대한 질문은 던집니다. 이에 손무는 이론과 실제 전투는 부합한다고 자신있게 말을 하죠. 


<손자대전>



   이에 합려는 손무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궁녀들을 군사훈련을 시키도록 명합니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많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합려가 손무를 조롱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는 약 2,500년 전 사람의 속마음은 알 수 없으니... 대략적인 흐름으로 이해할 뿐이죠. 합려의 명을 받은 손무는 궁녀 180명을 데리고 군사 훈련을 시작합니다. 이때의 이야기가 사기의 손자 오기열전에서 유래되는 삼령오신(三令五申)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손자대전>



   손무는 궁녀 180명을 즉석에서 군사훈련을 시작하는데... 이 때 손무가 처음으로 한 것은 합려에게 대장군의 부월을 받아 군대 지휘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습니다. 부월을 받았다는 것은 왕 이하 누구라도 처벌을 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얻게 되는 것이죠. 


<손자대전>


 

   이어서 합려가 가장 총애하는 궁녀 2명을 부대장으로 삼고... 2개의 부대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명령체계와 신호를 알려주었죠. 하지만 궁녀들은 명령에 따르지 않았고.. 웃기만 하였다고 합니다. 


 <손자대전>



   손무는 명령을 철저하게 하지 못하고 신호를 똑바로 하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 있으니.. 다시한번 명령체계와 신호를 확실히 한 후 다시 명령을 내립니다. 여전히 궁녀들은 명령을 따르지 않았고... 이에 손무는 부대장 둘을 포박한 후 명령체계를 확실히 하였는데요..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은 대장의 책임이라며 부대장 둘을 처형할 것을 명합니다.   


 <손자대전>


   

   이 것을 본 합려는 난처해하며 처형을 만류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손무는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나와있는 상황에서는 군주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라고 하며 두 부대장의 목을 베어버리죠. 이후 새로운 차석 부대장을 뽑아 군사훈련을 시작하자 궁녀들은 손무의 명령에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손자대전>



   합려는 후궁들이 목숨을 잃자 대노하였고... 손무는 합려에게 이론과 실제가 부합하냐고 물었으나.. 대왕은 이론만 좋아할 뿐이라며... 자신을 떠날 것이라고 선언을 합니다. 물론 이 부분은 상당히 각색이 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모르긴 몰라도 후궁의 목을 베었다는 사실만으로 손무 역시 목숨이 위태로웠을 것이죠. 다만 합려 역시 패자의 그릇을 가진 자로서 손무를 등용하였지.. 평범한 군주였다면...


 <손자대전>



   삼령오신의 일화 이후 초나라 정벌까지 손무에 대해 크게 알려진 것은 없다고 합니다. 초나라 정벌을 위한 준비과정에서 손무가 대장군에 올라 국력을 강화한 후 초나라 정벌의 시점을 잡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내었습니다. 다만 이후 행적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많은 사학자들이 오자서의 시체 매질 사건, 합려의 약탈, 군대의 방만 등의 이유로 실망하여 라부산에 은거했다는 설이 강하죠.


 <손자대전>


  

   또 일설에는 부개의 반란이 일어나 이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전사하였을 것이라고 추정을 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은거설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과연? 합려 혹은 부차가 손무같은 인재를 은거하게 두었을지는 미지수일 듯 하네요. 이런 인재가 만약 다른 나라에 넘어간다면... 그야말로 오나라 입장에서는 재앙과 같은 일일 태니깐요. 내부에서 제거당할을 가능성이 큰 것 같아요. 


 <손자대전>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에 한시대를 풍미했던 거인... 손무.. 이후 다양한 시대를 거쳐가며 현대사회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손무의 후손인 손빈 역시 손빈병법서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죠. ㅎㅎ 이상으로 손무의 일화인 삼령오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손자대전>


<출처. 손자대전, 손자병법, 손무 나무위키, 각종 네이버 사전 및 포탈사이트 참고>



반응형
그리드형(광고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