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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112회:) 부산행 - 우키시마호 침몰 미스터리 사건

알풀레드 2024. 1. 2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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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방영될 예정인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112회에서는 "부산행 - 우키시마호 침몰 미스터리 사건"을 집중 조명할 예정입니다. 해방 직후 강제징용되었던 조선인 노동자들이 고향으로 향하던 중 해상에서 갑작스러운 폭발 사고가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요. 아직까지도 우키시마호 침몰 미스터리 사건을 두고 일본이 계획적으로 침몰시켰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죠. 과연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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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원자폭탄이 투하된 후 6일만(1945.8.15.)에 일본은 연합군측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는데요. 1945년 8월 18일 일본 전범의 재판과 관련해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 이에 일제는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을 일본 해군에서 징발한 4,740톤급 화물선 우키시마호에 태워 오미나토 항에서 부산으로 돌려보내라고 명령을 하게 되는데요.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우키시마호는 8월 21일 일본 북동쪽에 있는 아오모리현의 오미나토 항을 떠나 부산항으로 향합니다. 당시 탑승인원은 공식적으로 3,735명(일본 정부의 사고처리문서에 기록)이었으나 실제 탑승객들의 증언에 따르면 약 7~8 천명이 탑승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부산항으로 향하던 우키시마호는 8월 24일 돌연 방향을 일본 중부 동해 연안에 있는 마이즈루항으로 돌리게 되는데, 이때 갑자기 폭음과 함께 배가 폭발, 두 동강이 나면서 침몰하였습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이로 인해 홋카이도, 아오모리, 도호쿠 등에서 강제 징용되어 노역에 시달리던 조선인 노동자 수천 명이 사망하게 됩니다. 이들 대부분 일제의 강제 노역으로 노예처럼 연명하던 노동자와 그 가족들로 광복의 기쁨을 안고 귀향을 하던 중 조국의 땅을 밟지 못하고 사망을 한 것인데요. 정말 안타까운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우키시마호 침몰 사고 후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조사를 하였으나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특히 일본 정부는 사고원인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미국이 마이즈루만에 부설한 기뢰와 접촉하면서 폭침했다는 '촉뢰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키시마호가 왜 마이즈루항으로 방향을 돌렸는지에 대해 의문이 드는데요. 일본 정부는 배의 연료가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우키시마호가 미군이 부설한 기뢰를 제거하기 위해 소해정을 기다려야 했으나 명령 전달 과정에서 혼동이 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반면, 우키시마호에 탑승했던 한국인 생존자들은 우키시마호가 폭발한 것에 대해 일본 해군의 계획적인 범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시 우키시마호의 승조원들은 배가 부산에 도착할 경우 분노한 조선인들에게 보복당할 것이 두려워 우키시마호에 조선인을 탑승시키는 명령에 강하게 항의하고 항명했다고 합니다. 이에 김영주 우키시마호 추모 협회 이사는 당시 조선인 징용자들을 일본에 남겨두자니 폭동이 우려되고, 살려두자니 국제 사회에서 일제의 만행을 증언할 수 있었기에 폭발 사고로 위장해 수장시킨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또한, 침몰 당시 승조원들이 우키시마호의 소함을 타고 배를 빠져나갔으며 그 뒤에 배가 폭발했다는 증언도 있었는데요. 우키시마호가 기뢰에 의한 폭발이 아닌 내부에 설치된 폭발물에 의한 폭발이라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잇달아 나왔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반드시 밝혀져야 할 사건으로 보이는데요. 일본 정부는 사건을 축소 은폐하였고, 조선인들의 진상 조사를 묵살하였고, 증거가 될 수 있는 선체는 아무 조사 없이 민간기업에 고철로 팔아넘겼다고 합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는데요. 2001년 교토 지방법원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한국인 생존자 15명에게 일본 정부가 300만엔씩 위로금 지급 판결을 내렸으나,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 요청은 기각했습니다. 그리고 2003년 오사카 고등재판소에서 번복되어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죠. 현재까지도 일본 정부는 자신들에게 책임이 없으며 진상 조사나 공식 사과는커녕 관련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는 등 책임 회피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날의 사건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에서는 어떻게 다룰지 궁금해지네요.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습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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