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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왕자의 난(무인정사)

알풀레드 2022. 3. 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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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군 이방원이 정도전과 세자 이방석을 제거하기 위한 1차 왕자의 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역사적으로 너무 유명한 사건이기 때문에 다양한 매체에서 1차 왕자의 난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용의 눈물, 육룡이 나르샤, 정도전, 나의 나라 등에서 개성 있는 장면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비교해서 봐도 좋을 것 같은데요. 

 

출처.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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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차 왕자의 난 혹은 무인정사로 알려진 이 반란의 끝은 정도전 일파와 세자 이방석이 죽음으로써 끝이 납니다. 조선 건국 초기 왕자들 간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도성 한복판에서 살육전이 벌어졌기 때문에 백성들의 눈에는 어떠한 형태로 보였을까요? 집안 싸움이라 개판 났다고 하지 않았을지... 

 

출처. 태종 이방원

 

1차 왕자의 난이 발생한 주요한 원인은 다음과 같이 정리가 될 수 있습니다.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인 이방석이 아무런 공도 없이 어머니의 도움으로 세자 자리에 올랐고, 이와 함께 정도전 일파가 사병 혁파 등 급진적인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불만은 품은 신의왕후 한 씨 소생의 왕자들이 불만을 품고 쿠데타를 일으킨 것입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드라마의 내용과 같이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지대한 공을 세웠던 왕자들을 멀리하고 쉽게 권력을 내어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분란을 일으킬 것으로 판단한 것이죠. 그렇다면 확실하게 처리를 했어야 하지만 어정쩡한 상황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스스로 빌미를 제공한 탓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1차 왕자의 난은 이방원을 중심으로 집결했다고 합니다. 이성계의 막내 동생 이화, 이성계의 조차 이천우와 조온이 이방원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이미 태조 이성계는 고립된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3남 이방의와 4남 이방간이 적극적으로 사병을 동원하여 이방원을 도왔습니다. 차남 이방과는 쓰러진 태조 이성계의 쾌유를 비는 제사를 지내고 있었는데,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조선판 왕자의 게임이 된 1차 왕자의 난... 조선 개국 당시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은 진안군 이방우(38세), 영안군 이방과(35세), 익안군 이방의(32세), 회안군 이방간(28세), 정안군 이방원(25세), 신덕왕후 강 씨의 소생은 무안군 이방번(11세), 의안군 이방석(10세)였다. 신덕왕후 강 씨의 아들들은 조선 건국에 아무런 공도 없이 날로 세자 자리에 올랐습니다. 현재까지 신덕왕후 강 씨의 입김으로 태조 이성계를 설득하여 이방석이 세자 자리에 책봉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가장 유력한 설이자 정확한 이유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원인에 대해 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이성계의 집안에서는 강씨가 비록 정비가 아니었으나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는 정비가 되었습니다. 정비의 아들이 후계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안고 가야 할 리스크가 너무 컸습니다. 정국이 안정화될 때까지 신덕왕후가 살아있었다면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겠지만 시간은 신덕왕후를 저버렸습니다. 그녀가 죽게 되자 불만을 가졌던 신의왕후 한 씨의 왕자들은 하나둘씩 이방석의 목을 노리게 되죠.  

 

출처. 태종 이방원

 

이방석이 왕세자로서 자질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제왕학을 가르키려고 하였으나 어린 시절부터 철없이 자란 탓에 다양한 사고를 터뜨렸다고 하네요. 장군들과 궁밖에 나가 남의 집 가축을 쏴 죽이거나 궁 안에 창기를 들이는 등 공부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중2병에 걸린 철없는 고딩 정도였을 것으로 보이네요. 만약 이방석이 왕에 올랐다고 한다면 권력을 모두 신하들에게 빼앗겼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이런 상황에서 정도전은 요동정벌을 추진하면서 병권을 집중하기 위해 사병 혁파 정책을 추진합니다. 이는 신의왕후 한씨의 왕자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사병은 곧 자신들의 목숨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죠. 만약 정도전이 아닌 이성계가 직접 움직여 사병을 혁파하였다면 성공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그렇게 하지 못했죠. 정도전의 정책은 매우 필요하였으나 그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기반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풍을 맞게 됩니다. 또한, 요동 정벌이라고 하는 명분 역시 다른 이들에게 동의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1차 왕자의 난이 발생한 것이죠. 

 

출처. 태종 이방원

 

이방원은 이숙번, 이거이, 조영무, 신극례 등의 병사를 이끌고 난을 일으켰습니다. 다른 종친들은 눈치를 보다가 때를 맞춰 이방원의 진영에 합류했다고 하네요. 얄미워도 이들이 자신의 편이 되어준다면 확실한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방원은 모두 받아 줍니다. 그리고 세자 이방석과 이복동생 이방번 그리고 정도전 일파를 제거한 이방원은 조선의 권력을 틀어쥐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태조가 차남 이방과에게 양위를 하게 되고 정종에 즉위합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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