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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 1차 왕자의 난의 서막

알풀레드 2022. 1. 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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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인기가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조선이 건국되는 과정에서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의 갈등이 점차 심화되고 있는데요. 갈등의 도화선은 선죽교에서 포은 정몽주가 살해된 사건입니다. 정몽주의 죽음 이후 부자의 갈등이 점차 심화되는데... 이는 결국 무인정사 혹은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는 주요한 배경이 됩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좌: 이성계(배우 김영철), 우: 이방원(배우 주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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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정몽주의 죽음에 대해 잠깐 살펴본 후 1차 왕자의 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몽주는 고려를 개혁하기 위해 이성계 일파와 손을 잡지만 이성계 일파의 진정한 목적이 고려의 개혁이 아닌 역성혁명을 통해 왕조를 교체하려는 사실을 알고 이들과 결별을 하게 되는데요.

 

출처. 태종 이방원(포은 정몽주: 배우 최종환)

 

고려 최후의 보루로서 이성계 일파에게 큰 위협이 됩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이런 정몽주를 자신의 대업에 함께 참여시키고자 하였지만 정몽주는 이성계와 함께 할 수 없었고, 어느 날 이성계가 사냥중 낙마를 하면서 큰 부상을 당할 때 일거에 그들을 소통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방원은 정몽주를 죽이지 않는다면 결코 대업을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수하인 조영규와 조영무 등에게 명을 내리게 되는데요. 정몽주의 죽음은 곧 고려의 멸망을 의미했습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좌: 조영규, 우: 조영무)

 

이방원의 파격적인 행보로 인해 조선을 건국하는데 방해물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정몽주의 죽음에 대해 큰 분노를 하게 되고, 이방원을 크게 원망하게 됩니다. 드라마 상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고려 백성들에게 박수를 받으며 왕위에 오르고자 하는 마음을 알겠지만 그것은 욕심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포은 정몽주를 잊고 새 왕조를 건국하기 위한 결심을 촉구하죠. 

 

출처. 태종 이방원(좌: 이성계, 우: 정도전)

 

정몽주의 죽음 이후 고려 최후의 왕인 공양왕에게 선위를 받은 이성계는 조선을 개국합니다. 조선 개국 후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인 이방원과 형제들은 이성계에 대한 불만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세자 책봉 문제인데요.  

 

출처. 태종 이방원(좌: 이성계(배우 김영철), 우: 이방원(배우 주상욱))

 

신덕왕후 강씨와 이방원은 대업을 이루기 위한 험난한 과정 속에서 정치적 동맹 관계로 서로에게 든든한 우군이었지만 대업이 완성된 후에는 하나뿐인 후계자 자리를 두고 다투어야 할 적으로 변한 것이죠. 먼저 선수를 친 것은 신덕왕후 강씨였습니다. 자신의 아들인 이방번과 이방석 중 한 명을 세자로 책봉시키기 위해 정치적인 손을 쓰기 시작합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좌: 신덕왕후 강씨, 우: 이방석)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로(이시점에서 본처인 신의왕후 한씨는 사망한 상태)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지대한 공을 세웠기 때문에 영향력이 엄청났습니다. 특히 곡산 강씨 집안은 고려 시대 중앙 정계의 핵심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이성계가 중앙 정계로 진출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고, 알게 모르게 큰 힘이 되었죠. 그렇기 때문에 입김이 상당했습니다. 또한, 정도전과 남은 등 주요 공신을 포섭하여 자신의 아들인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시키는데 성공을 하게 되는데요. 

 

출처. 태종 이방원(좌: 이성계, 우: 정도전)

 

문제는 신덕왕후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아들 방석이 세자에 오른 후 얼마되지 않아 병으로 사망한 것인데요. 이로 인해 이방원과 형제들이 무인정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결정적인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만약 신덕왕후 강씨가 살아있었다면 명분상 이들이 난을 일으킬 수가 어려운 상황에 당면했을 것입니다. 조선은 유교 국가로서 틀을 잡았기 때문에 후세 '폐모살제'라는 명분으로 광해군이 폐위된 사건을 돌이켜보면 지속적인 저항에 부딪혔을 것입니다. 아무튼 신덕왕후의 사망과 함께 정도전이 내놓은 국가 정책은 이방원에게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정도전은 유교적 왕도 정치 실현을 위해 성리학적 이념에 바탕을 두고 나라의 기틀을 잡아갔는데요. 새로운 법제도의 틀을 닦았고, 도읍을 옮겨 새 왕조의 면모를 높였습니다. 또한, 안정적인 왕권 확립을 위해 사병을 혁파하고 국가에서 병권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방원과 형제들에게 사병이란 곧 자신들의 힘과 권력이었으며 목숨줄이었기에 사병을 결코 내놓을 수 없는 입장이었죠. 

 

출처. 태종 이방원

 

1398년 무인년 8월 25일 이방원은 형제들과 모의하여 사병을 이용해 난을 일으킵니다. 이들은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 반대파 세력을 불의에 습격하여 살해하고, 세자 방석과 그의 동복형 방번을 살해하게 되는데 이 사건을 바로 무인정사 혹은 1차 왕자의 난이라고 불립니다. 왕자의 난이 일어나면서 세자가 살해당하게 되자 태조 이성계는 둘째 아들 이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상왕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비록 2대 국왕으로 이방과가 정종으로 즉위하였으나 실질적인 권력을 모두 이방원에게 집중되는 구조를 띄게 되죠. 

 

출처. 태종 이방원

 

태조와 신덕왕후 강씨 그리고 정도전은 이방원에 대한 지나친 경계와 냉대는 결국 조선왕조 개국 초장부터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신덕왕후 강씨가 욕심을 버렸다면 자신들의 아들들은 천수를 누렸을 것입니다. 아무런 공이 없는 어린 아들을 세자로 책봉시켜 왕이 되는 모습을 꿈꿨겠지만 현실은 이복형들에 의해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게 된 것이죠. 그 자신은 제대로 된 무덤도 없이 죽은 후에도 태종에게 박해를 받게 되기도 합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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