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정보☆★/대한민국:)고려시대

[천일야사] 고려시대! 노비 해방을 꿈꾼 혁명가 만적!! 만적의난 이야기!!!

알풀레드 2019. 3. 21. 22:44
반응형


   고려시대... 한 남자가 벼랑 끝에 몰려 있습니다. 과연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이 남자는 '잃을 것은 노비 문서요. 얻는 것은 천하인데... 왜라니..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라고 절규하는 한 남자... 




   배신은 죽음뿐이라는 말에... 절규하던 남자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저 노비와 주인 사이에 배신이라니... 그마저도 황송하다'고 말하는 노비... 주인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 노비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더냐? 라고 외친 고려시대 인물에 대해서 알고 있으신가요? 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만적이라는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1170년(의종 24년)에 일어난 무신정변(무신란)은 고려사회를 뒤집어 엎어버렸는데요. 당시 가장 변화는 바로 신분제도의 변화였습니다. 집권층인 문신에 대항해 일어난 무신들... 즉 상대적으로 신분이 낮은 무신이 문신들에게 대항하여 일어난 만큼 하극상이 팽배해진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는데요. 




   당시 견룡행수(숙위군)였던 이의방과 이고를 중심으로 젊은 무신들이 난을 일으켰고... 이어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그리고 최충헌 집안의 60년 권력까지 어지러운 사회가 지속되었습니다. 그중 이의민의 신분은 매우 미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아버지는 소금장수.. 어머니는 영일현 옥령사의 종이었다고 합니다. 




   이의민이 미천한 신분으로 고려 시대 최고의 권좌에 오르자 모든 노비들의 위너가 되고... 노비들은 신분 상승에 대한 열망이 커져만 갔습니다. 이시대에 무인정권은 독자적인 세력을 거느리기 위해 농민의 땅을 빼앗는 등 갖은 폭정이 이어짐에 따라 잦은 민란이 생겨났다고 하네요. 대표적으로 김사미와 효심의 농민 반란이 있습니다. 




   농민봉기인 김사미와 효심의 난이 진압된 지 3년 후 1196년(명종 26년) 정권은 이의민에서 최충헌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최충헌이 집권한 후에도 여전히 농민봉기는 이어졌고... 특히 남부지방에서 대대적인 농민봉기가 일어나면서 중앙정부를 긴장시키는 일들이 발생하였는데요. 




   1198년 최충헌이 정권을 잡은 후 가장 먼저 발생한 항거운동이 바로 만적의 난이라고 불리는 노예해방운동입니다. 만적은 최충헌의 사노이나 가노로서 열악한 환경에서 매질을 당해가며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만적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 하는데요. 민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는 천일야사에서는 만적이 사랑하는 여인이 상장군네 몸종으로 팔려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 후 난을 일으키려고 했다고 전합니다.  



   

   만적은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려고 하지만 최충헌의 배신으로 분이는 귀족에게 겁탈을 당한 후 죽음을 맞이하고...




   주인 최충헌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된 노비 만적... 




   어느날 동료인 미조이, 연복, 성복, 소삼 등으로 불리는 노비를 모아 다음과 같이 선동을 했다고 합니다. '정중부의 난 이후 고관이 천한 출신에서 나왔다.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 때가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왜 우리만 상전의 매질을 당해가며 뼈가 빠지게 일만 해야 하는가?' 라며 노비들을 선동하였고... 노비들은 그런 만적을 지도자로 떠받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점을 보면 만적이라는 인물은 일반적인 노예와 달리 상당히 똑똑한 인물로 볼 수 있으며 언변도 좋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특히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 라는 말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와있는데... 진섭세가에서 오광과 진승이 남긴 말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을 알고 있다는 것은 당대 왕후장상에 대한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았을 것이라는 말도 있죠. 




   만적의 선동에 고무된 노비들은 곧 누런 종이 수천 장을 오려서 '정'자 휘장을 만들어 거사를 약속했다고 하네요. 노비들은 자신들의 주인을 죽이고 노비문서를 불태워 이 나라에 천만이 하나도 없도록 만들자고 계획하였으나... 




   실제 거사일에 참여한 노비는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새롭이 날짜를 잡고 거사를 일으키려고 하였으나... 이 거사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순정이라는 노예가 자신의 주인에게 밀고를 하게됩니다. 




   일설에는 순정의 주인인 한충유가 노예들에게 잘 해주었다는 말도 있고... 순정이라는 인물이 약삭빠른 인물이라 변절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만적의 난이 실패로 돌아가게 한 결정적인 인물로... 만적의 난이 끝난 후 상금 80냥을 받고 노비에서 양민으로 신분 상승을 하였다고 합니다. 




   만적의 난을 전해들은 최충헌은 재빨리 손을 써서... 이들을 진압하였다고 하는데요. 만적을 비롯한 반역 모의에 가담한 노비 100명을 잡아 포대기에 넣오는 가차없이 강물에 버렸다고 하네요. 많은 노비들이 참여하였지만... 주동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죄를 사면했다고 합니다. 




   만적의 난이 역사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로는 당시 사회적 여건에서 노예 스스로 해방 운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만적은 이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고 하는데요. 이는 당시 집권자였던 최충헌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답니다. 




   만적의 난에 영향을 받아 이후에도 많은 노비들이 모여 해방운동을 벌이는 일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불합리한 사회적 구조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꿈꾼 노예해방 혁명가 만적... 만약 그의 계획이 성공으로 끝이 났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하였을까요? 



<출처. 천일야사 방송 내용 및 네이버캐스트 만적편 참고>



반응형
그리드형(광고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