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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33대 국왕:) 창왕의 죽음 재위기간, 가계도

알풀레드 2021. 12. 1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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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제33대 국왕 창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인기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는 우왕이 폐위된 후 창왕이 옹립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창왕 역시 폐위되는데요. 조선사에 단종이 참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다면 고려사에서는 창왕의 죽음은 그에 비할 만큼 비극적인 운명인 듯합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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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왕은 폐위당한 왕이라 묘호나 시호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휘를 따서 창왕이라고 불리는데요. 우왕이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손에 넣은 이성계를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실패하여 폐위를 당하게 되자 창왕이 8살의 나이로 즉위합니다. 창왕 즉위 당시 이미 이성계 일파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권 없는 허수아비 왕이었죠. 

 

<출처. 정도전>

 

창왕 재위 기간[1388년~1389년]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우선, 정치적 동지였던 이성계와 조민수가 권력 싸움을 하다가 이성계가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군사적으로는 박위가 쓰시마 섬 정벌을 하여 상당한 전과를 거둡니다. 이성계는 정도전, 조준 등 신진관료들과 함께 개혁을 단행하기 시작하는데요. 1388년 7월 토지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전제개혁소를 올리기도 합니다. 

 

<출처. 정도전>

 

이성계의 정적이었던 조민수와 이색 일파는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게 되자 말그대로 이성계의 세상이 되었는데요. 이성계 일파는 창왕을 폐위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차에 1389년 11월 김저와 정득후의 우왕 복위 사건이 터지면서 창왕을 폐위를 결정하게 되죠. 이때 명분이 폐가입진(가짜를 폐하고 진짜를 세운다)의 논리로 우창비왕설(우왕이 신돈의 자식)을 들고 나왔다고 합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

 

결국 우왕은 폐왕의 지위를 빼앗기고 그의 아들 창왕은 신돈의 손자라는 명분으로 폐위당하고 마는데요. 이성계 일파는 공양왕을 옹립하고, 우왕과 창왕을 처형합니다. 대부분 매체에서는 사사되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참수를 했다고 하네요. 역적으로 몰려 처형을 당하다보니 시신이 온전히 보전되기 어려웠고 무덤이 있다는 기록이 없다고 하니 쓸쓸한 죽음이 아닐 수 없네요. 

 

<출처. 태종 이방원>

 

창왕이 10세의 나이로 처형을 당하다보니 한국사를 뒤져봐도 가장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출처. 두산백과 창왕의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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