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6.25 전쟁 영웅 백선엽(100) 예비역 대장이 별세했다고 합니다. 백선엽 장군은 간도특설대 복무전력으로 인해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등재되어 있지만 6.25 전쟁 당시 일선에서 다양한 전과를 올리는 등 명장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백선엽 장군의 대표적인 전과로는 1950년 8월 대구에 진출하려던 북한군을 다부동 전투에서 물리쳤습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한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가에 교두부를 마련...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반격을 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다부동 전투에서 불리한 전황에도 불구하고 아군에게 "내가 앞장설 테니, 내가 물러나면 나를 쏴라'고 말하며 인민군이 점령한 고지로 뛰어올라 갔다고 하는 일화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으로 진격할 때 미국 지휘관들은 한국군의 전투력을 의심하였다고 하는데요. 백 장군은 직접 영어로 한국군은 사기와 전투력이 높다고 설명하며... UN군의 선두로 평양에 진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백 장군이 이끄는 1사단은 평양에 처음으로 입성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합니다.
평양 점령 후 북진을 하던 때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전황이 뒤바뀌기 시작하였는데요. 이로 인해 한국군을 패퇴하여 다시 남쪽으로 밀려났고...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1사단은 1.4 후퇴 기간 중공군을 상대로 전과를 올렸다고 합니다.
백선엽 장군은 당시 맥아더 장군을 비롯한 미군 최고 지휘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미군 내에서 한국군 지휘관들에 대한 평가가 매우 박하였다고 하는데(언어 소통 문제 등)... 백선엽 장군의 실력만큼은 대부분 인정하였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현재 주한미군들 조차 백선엽 장군을 살아 있는 전설로 극진히 대우하였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그의 전공을 인정하면서도 간도특설대 복무를 한 사실로 인해 평가가 많이 엇갈리고 있는데요. 분명한 건 백선엽 장군의 활약이 없었다면 북한에 의해 적화통일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점입니다.
백 장군은 1920년 11월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2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약송소학교를 거쳐 39년 평양사범학교를 마쳤고... 이후 교사생활을 하다 이듬해 만주국의 군 간부 양성소인 중앙육군훈련처에 들어가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하디만 다른 반일행위를 한 인물들처럼 독립군을 토벌하거나 반민족적인 행위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죠.
군에서 은퇴한 후 6.25전쟁 기념사업과 회고록 집필, 강연 등 젊은 세대에게 대한민국의 가치와 국방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해온 백선엽 장군은 10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이라고 하네요.
<출처. 다음 포털 사이트 내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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