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리뷰☆★/꼬리에꼬리를무는그날이야기:)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87화:) 금메달리스트 손기정(+꼬꼬무, 남승룡)

알풀레드 2023. 7. 10. 19:20
반응형

7월 13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78화에서는 "총성과 함성 사라진 금메달리스트"라는 제목으로 방영될 예정입니다. 과연 이번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꼬꼬무)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까요?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반응형

 

이번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시대 대한민국 최초의 금메달 리스트인 손기정 선수의 일화를 다룬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조국의 대표팀이 아닌 일본 대표팀으로 올림픽 마라톤 종목에 출전한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선수이기도 하죠. 일본인들은 손기정 선수가 일본 대표로 나간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겨 많은 방해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 참가하여 당당히 금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 육상계의 영웅이 되었죠.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손기정은 어린 시절부터 달리기에 소질이 있는 가진 학생이었습니다. 그의 집은 매우 가난해 학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 옥수수나 참외 등을 팔거나 우동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집과 학교가 2km 거리에 있어 어린 시절부터 매일 달렸다고 하는데요. 그녀의 모친은 아들이 공부로 성공하기를 바래서 여아용 고무신을 신기기도 했으나 손기정은 달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해요. 손기정의 재능을 눈여겨본 이일성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육상 선수로 활약하기 시작합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손기정의 회고에 따르면 스케이트를 타는 학생들이 매우 부러워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돈이 많이 들어 자신은 스케이트를 탈 수 없었고, 이에 돈이 들지 않는 달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손기정은 소학교 때 신의주와 만주 안동현 사이를 달리는 안의육상경기대회 5,000m 달리기 종목에 출전해 어른들을 제치고 우승을 하였습니다. 이어 전국체육대회에 평안북도 대표로 출전해 5,000m에서 2위를 기록하죠. 가난으로 인해 한 때 포기하려고 했던 달리기를 이때부터 선수로써 활동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그리고 발군의 실력을 가진 손기정은 일본의 올림픽 국가대표에 발탁됩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순수 일본인을 뽑으려는 불공평한 대결을 종용하기도 했는데요. 함께 조선인으로 출전한 남기룡 선수와 함께 최종 선발전에서 1위를 기록하면서 일본인들의 콧대를 시원하게 꺾고 두 사람 모두 1위와 2위를 기록합니다. 일본 육상팀은 베를린 올림픽 현지에서 2차 선발전을 하는 어이없는 대회를 다시 열지만 두 사람을 굴하지 않고 이겨냅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팀은 지름길을 이용하는 반칙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손기정과 남승룡이 1위와 2위를 기록합니다.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1936년 8월 9일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 출전한 손기정과 남승룡은 우승 후보들을 물리치고 금메달과 동메달을 각각 목에 걸었습니다. 역사적인 순간이죠. 하지만 시상식에서는 우리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죠.

 

출처. 커뮤니티 사이트

 

손기정 선수는 자신의 가슴에 박혀 있는 일장기를 묘목으로 가렸습니다. 당시 남승룡 선수는 일장기를 가리고 싶어 바지를 최대한 끌어 올렸으나 가릴 수 없었다고 회상하였는데요. 손기정이 우승해서 금메달을 땄다는 사실보다 묘목을 받아 일장기를 가릴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느냐 일본 국가가 흘러나왔을 때 비통함이 어땠을지 감히 짐작도 되지 않네요.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소식이 조국에 알려지자 조선인들에게는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당시 조선중앙일보는 손기정의 시상식 장면의 사진을 게재하였는데 그의 가슴에 있는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건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당시 조선중앙일보는 이 사건으로 인해 폐간되었다고 합니다. 언론인들의 양심을 건 일본에 대한 항거였다고 볼 수 있죠. 

 

출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였으나 암울한 시대에 조선인으로서 일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 서울특별시 육상경기연맹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대한민국 육상 발전을 위해 힘썼습니다. 자신의 뒤를 이어 1992년 8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 누구보다도 기뻐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육상계의 살아있는 전설 손기정 선수는 2002년 11월 15일 지병으로 인해 영면에 듭니다. 

 

출처. 커뮤니티 사이트

반응형
그리드형(광고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