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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 가계도, 재위기간, 부인(철인왕후), 아들

알풀레드 2020. 12. 14.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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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드라마 '철인왕후'가 첫 방송만에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타임슬립을 소재로 조선 제25대 왕 철종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철종에 대해 다시한번 살펴보려 합니다. 





   조선시대 25대 왕 철종은 별다른 업적을 세우지 못한채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이에 사극에서 잘 다뤄지고 있는 흥선대원군이나 명성황후 혹은 고종 등의 인물을 소개하기 위한 시대적 배경을 알기 위해 잠시 들러리로 등장할 뿐이었죠. 





   이번 tvN드라마를 통해 철종이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철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안습의 왕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비록 다른 왕들처럼 제왕학을 익히지 못했지만 민초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민초들의 고달픈 삶을 이해하고 바꾸려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세도 정치가 뿌리 깊게 내려짐에 따라 실패를 하고 민생은 도탄에 빠지게 되죠. 





   우선 철종의 재위기간에 대해 살펴볼까요? 철종은 1849년에 왕으로 옹립되어 1864년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약 14년 동안 국정을 다스렸습니다. 이름은 이원범이며 조선 한성부 경행방 향교등 사저에서 출생(1831년)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철종은 '강화도령'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그 이유는 왕에 오르기 전 어린 시절을 강화도에서 나무꾼 혹은 농사를 지으며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입니다. 





   철종 시대는 순조 대부터 시작된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습니다. 세도 정치로 인한 탐관오리들의 전횡으로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해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진 것이죠. 





   안동 김씨가 세도 정치를 하게 된 배경으로는 대왕대비인 순원왕후의 영향이 컸습니다.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는 손자인 헌종이 젊은 나이로 요절하자 파트너이자 경쟁자였던 풍양 조씨 일파가 권력을 잡게 될 것을 우려하여 후사를 결정하였는데요. 이 과정에서 차기 왕으로 지목된 인물이 바로 이원범... 즉 철종이었습니다. 





   당시 헌종은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권력 투쟁에 휘말려 전전긍긍하다가 스물셋의 일기로 후사없이 사망하였습니다. 이에 헌종의 6촌 이내 왕족을 찾았지만 없어 7촌 이상의 왕족을 찾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강화도령으로 불리던 이원범이 선택됩니다. 





   문제는 이원범의 항렬이 헌종보다 높았다는 것인데요. 본래 후대의 왕은 항렬을 따져 동생이나 조카벌이 되는 자가 왕통을 잇게 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가까운 왕족이 없어 원칙이 무시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안동 김씨가 자신들의 권력을 돈독하게 하기 위해 항렬을 무시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되죠. 





   철종은 사도세자의 증손자로 정조 대왕의 아우 은언군의 손자입니다. 사도세자가 죽은 후 정조가 세손이 된다면 보복 당할 것을 우려한 세력들이 역모를 꾸미게 되는데 사전에 발각되어 대거 숙청됩니다. 이때 정조의 이복동생인 막내아들 은전군은 자결하고 은언군과 은신군은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은신군은 제주도에서 병상하고 은언군은 강화도로 유배지를 옮깁니다. 






   1779년 은언군의 아들 상계군이 홍국영에 의해 원빈 홍씨의 양자로 내정되는데요. 1786년 상계군을 추대하려던 구선복에 의해 모반죄로 강화도로 유배된 후 음독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1844년 헌종 10년 민진용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은언군의 손자이자 이광의 아들 이원경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여 숙청당합니다. 





   진계대원군 이광의 첫째 아들 이원경이 사사된 후 둘째 아들 이경응과 이원범은 목숨을 부지한 채 강화도로 유배됩니다. 천애 고아가 된 두 형제는 강화도에서 나무를 하고 농사를 지으며 일반 백성의 삶을 살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왕통을 이으라는 교지가 내려집니다. 





   순조의 손자이자 제24대 왕 헌종이 요절하자 왕실 최고의 어른이었던 순원왕후 김씨는 헌종의 7촌 재당숙이자 순조의 5촌 조카인 이원범을 차기 국왕으로 지명합니다. 처음 자신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온 행렬을 본 원범은 할아버지나 큰 형이 역모로 죽은 기억을 떠올려 산속으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이때 철종의 나이는 19세였습니다. 





   철종이 왕으로 즉위한 후 나이가 어리고 학문을 연마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1851년까지 대왕대비인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습니다. 철종이 21세가 되던 해 김문근의 딸 철인왕후를 부인으로 마지하게 되었고, 이로서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어린 시절부터 서민들의 민생고를 직접 눈으로 본 철종은 구제책이나 이재민 구휼 등 여러 개혁 정책을 능동적으로 추진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실권을 가진 안도 김씨와 풍양 조씨 등 세도 가문들은 철종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았고 대부분 불발됩니다. 




  

   세도 정권의 막강한 힘과 독단 앞에 철종은 그저 힘없는 불우한 왕에 불과했습니다. 우선 정통성이 부족한 왕이라는 점은 치명적이었고, 무엇보다 철종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지지해줄 수 있는 친위 세력이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민생을 돌보기 위한 국지적인 정책을 펼칠 수 밖에 없었죠.  





   1853년 봄 관서 지방에 기근이 발생하자 백성들을 구휼하고 탐관오리를 징벌토록 명하였습니다. 함흥의 화재민을 위해 비용을 내리고, 영남의 수재 지역도 보살피는 등 빈민 구제를 위해 노력하였는데요. 정치의 실권을 가진 안동 김씨 일파의 전횡으로 탐관오리는 계속 늘어나고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으로 백성들의 삶을 피폐해집니다. 





   철종 개인의 능력을 출중한 편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세도 정권의 힘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세력을 키울 수 있는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안동 김씨는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할 수 있는 자가 있으면 사전에 처단하였기 때문이죠. 





   결국 철종은 자신의 뜻대로 정사를 펼칠 수 없게 되자 국사를 소흘히 하고 술과 궁녀들을 가까이합니다. 본래 튼튼한 몸을 가진 철종이었지만 이때부터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1863년 12월 33세의 일기로 사망합니다. 철종의 자식들은 유난히 단명하였는데 철인왕후 김씨가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일찍 사망했고, 후궁과 궁인들에게 아늘 넷을 얻었으나 모두 일찍 사망하였습니다. 





   민생을 안전시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철종... 안동 김씨의 전횡으로 결국 꿈을 접게 되었네요. 



<출처. 철인왕후 홈페이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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