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암살범, 안두희 정의봉에 사망...
1996년 10월 23일 인천에서 80살 노인 한 명이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살해당한 피의자는 한국 역사를 뒤바꿔 놓은 사람이었는데요. 그의 이름은 바로 안두희로 김구 선행을 암살한 인물이죠.
안두희를 살해한 이는 평범한 버스 기사로 평소 김구 선생을 존경했다고 전하였는데요. 인천광역시 중구 신흥동 자택에서 박기서는 정의봉이라고 새겨진 몽둥이로 안두희를 죽을 때까지 두들겨 팼다고 하죠. 안두희를 때려 숨지게 만든 박기서는 법정 최소 5년형인 살인죄를 감경받아 3년 선고... 그리고 죄를 사면받아 1년 3개월 동안 징역살이 후 풀려났습니다.
안두희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그는 1917년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34년 신의주상업학교를 졸업... 메이지대학을 다니며 기생과 결혼하는 등 방탕한 생활을 이어왔다고 합니다. 해방 이후 서북청년회에 가입하여 극단적인 반공주의자로 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육사 8기 졸업 후 남조선국방경비대 장교로 임관하여 포병사령부 소속 포병 소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포병사령관 장은산과 김지웅, 홍종만의 사주를 받아 1949년 6월 26일 서울 경교장 서재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권총으로 암살함으로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 되었죠. 이 사건으로 안두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년도 안되 특별사면으로 풀려나 군에 복귀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김구 선생의 죽음으로 120 만 명이 장례식장을 찾을만큼 국가적인 슬픔이었으나... 군은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공산주의 세력을 응징한 의거라고 규정했고, 이승만은 김구 세력의 내부 갈등으로 빚어진 우발적 총격 사건이라는 특별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승만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죠. 그 이유는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김구 선생이 최대의 정적이었기 때문에 배후로 지목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 배후를 알 수 없지만... 결론적으로 남한 단독 정부를 수립...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죠.
안두희는 김구 암살 이후 군에 복귀하여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리게 되죠. 대표적으로 4.19 혁명 이후 민족정기회복을 부르짓는 청년들에게 쫓겨 잠적생활과 납치 그리고 곽태영에게 칼을 맞기도 하고... 결국 박기서에게 정의봉에 맞아 피살되었죠.
이러한 역사적 사실 속에 한가지는 분명이 살펴볼 부분이 있는 것 같네요. 친일파들의 공작을 했다는 사실인데요. 현재 일본과 국가적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주적이 되고 있는 나라... 1993년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진 후 조사한 결과 친일 행적이 있던 군부 세력이 안두희 배후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안두희는 백범 김구 선생과 여러 차례 인연을 맺어 왔지만 결국 악연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수차례 김구 선생을 암살하려는 시도를 한 끝에 결국 암살을 한 안두희... 박기서의 정의봉에 두들겨 맞아 사망한 후 김구 암살 사건의 정확한 실체는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네요.
<출처. 스브스 뉴스 및 나무위키 내용 참고>